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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타락죽, 수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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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1-05-24 14: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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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타락죽, 수테차
-몽골 유목민의 음식문화와 영향-

HK+사업단 HK연구교수 김장구

  몽골인은 음식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고기 종류는 ‘붉은 음식(улаан идээ 올란 이데)’, 우유와 유제품은 ‘흰 음식(цагаан идээ 차간 이데)’이라고 부른다. 농사를 짓지 않고 가축을 기르는 몽골 유목민의 주식은 고기(мах 마흐)와 다양한 유제품, 수테차(сүүтэй цай 우유차), 아이락(айраг 마유주) 등이다. 또 빵(талх 탈흐)과 과자(боов 보브), 국수(гоймон 고이몽)와 고기만두(бууз 보쯔)도 즐겨 먹는다.


[사진 1] 보쯔와 샐러드
 
  몽골인에게 삶은 양고기는 최상의 음식이다. 한편 장거리 원정 시에는 말려서 빻은 육포(肉包)인 보르츠(борц)를 전투식량으로 이용하였다. 요즘은 계절과 상관없이 고기를 먹지만, 전통적으로 여름에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대부분 빵과 국수, 유제품 등으로 식사를 했다. 몽골 유목민들은 평생 고기를 먹지만 건강은 비교적 양호한 편인데, 이는 가축들이 초원에서 자란 야생풀을 뜯어먹기 때문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에게 음식은 기본적으로 이웃과 나누고 손님에게 베푸는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한다. 그래서 손님에게 식사를 했느냐고 ‘물어보고 주느니 쏟아 버리는 게 낫다.(Асуухаас асга 아소하스 아스가)’는 말까지 있다. 즉 손님이 오면 먼저 과자와 사탕 등을 탁자에 올려놓고 수테차를 내준다. 그런 다음에 보통 ‘양고기 칼국수’라고 할 수 있는 ‘고릴태 슐(гурилтай шөл)’ 또는 고기를 준비해서 손님에게 대접한다. 손님은 배가 아무리 불러도 주인이 대접하는 음식을 일일이 먹거나 맛이라도 보아야 한다.
  몽골 음식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리 다양하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느낌을 준다. 유목민 여성은 보통 수백 마리나 되는 가축의 젖을 짜고 집안일에 음식 준비 등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하는 것이 일과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한가하게 가축만 돌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많은 가축을 초원으로 몰고나가 돌보며 이동해야 하고 게다가 외부에서 침입자를 경계할 뿐 아니라 늑대나 야생동물로부터도 가축을 보호해야 하는 등 고단한 삶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몽골은 정말 건조하고 추운 나라로 고기와 함께 비계도 즐겨 먹는다. 특히 커다란 비계 덩어리인 양 꼬리를 손님에게 내주는 것은 존중의 의미도 담겨 있다. 그리고 양고기와 비계를 많이 넣고 양파와 파 등 채소를 조금만 넣어 쪄먹는 ‘고기만두’, 기름에 튀기는 ‘고기호떡(хушуур, 호쇼르)’도 즐겨 먹는다. 이런 고기만두나 고기호떡 서너 개만 먹어도 하루 종일 허기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든든하다. 고기를 적게 넣고 채소를 많이 넣는 우리와는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몽골의 ‘설날(цагаан сар, 차간 사르)’에는 수백 개의 고기만두를 만드는데 이 때 한 두 개의 만두 속에는 동전을 넣는데, 그 만두를 먹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있다. 특히 한국에서 몇 년 살아본 몽골 사람들은, 요즘에 고기만두와 함께 한국 ‘김치(кимчи)’를 곁들여 먹는데 이러면 고기만두를 한없이 먹게 되어 준비해 놓았던 만두가 일찍 떨어지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사진 2] 몽골의 설날 음식

  『몽골비사』에 따르면, 칭기스 칸(Чингис хан)도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도망 다닐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물고기를 잡아먹고 풀뿌리를 캐먹었다고 한다. 몽골에도 강과 호수가 있으니 당연히 물고기도 있는데 거의 먹지 않는다. 그리고 채소도 즐겨 먹지 않는데,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채소를 기를 수도 없고 기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축들이 풀을 뜯어먹고 사람은 그 고기를 먹으면 되지, 왜 사람이 풀을 뜯어먹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몽골인은 허리띠에 매달고 다니던 칼(хутга 호트가)과 젓가락(савх 사브흐)으로 음식을 먹었는데, 20세기에는 러시아의 영향으로 숟가락(халбага 할바가)과 포크(сэрээ 세레)를 많이 사용했다. 요즘에는 전통문화의 부활과 한국문화의 영향 등으로 다시 젓가락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종 가축(五種家畜, таван хушуу мал 타반 호쇼 말)의 젖은 몽골 초원에서 최상의 음료이다. 우유는 흰색이며, 흰색은 몽골인이 가장 숭상하는 색깔이다. 우유를 끓이면 온도에 따라 타락(тараг), 버터(бяслаг 뱌슬락), 말린 요구르트(ааруул 아롤), 치즈(цөцгий 추츠기), 크림(өрөм, 우룸), 기름(шар тос, 샤르 토스) 등 다양한 유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 중에서 요구르트인 타락은 조선시대 임금님만이 드실 수 있는 ‘타락죽’으로 대접을 받았으며, 타락을 만들던 동대문 근처의 산 이름도 ‘타락산(тараг山)’이었다. 지금은 줄여서 낙산이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자로 된 이름으로 잘못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설렁탕’이 몽골어 ‘슐룽(шөлөн)’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우유, 타락, 치즈, 버터 등 유제품이 유명한 동유럽은 특히 중앙유라시아 유목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사진 3] 몽골초원의 양과 염소떼

  한편 몽골인이 즐겨 마시는 수테차(우유차)는 벽돌모양의 ‘전차(磚茶)’을 빻아서 물에 넣고 끓이다가 버터와 우유, 소금 등을 섞어 만든 음료이다. 겨울 뿐 아니라 무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수테차를 마신다. 요즘 도시에서는 홍차를 즐겨 마시는데 아주 달게 해서 마시고 어떤 사람은 각설탕을 입안에 물고 홍차를 마시기도 한다. 그래서 사탕, 설탕, 초콜릿 등은 추운 지방에 사는 몽골인에게 좋은 선물이 된다.

  또 전투나 경마에 출전하는 말 꼬리와 등에는 말 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을 뿌리며 행운과 우승을 기원한다. 소가죽으로 만든 큰 통 속에 말 젖을 넣고 수천 번 저어 만드는 아이락은 흰 색깔에 맛은 시큼털털하며 알코올 도수가 5~6도 정도이기 때문에 마치 막걸리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여름에 아이락만 10~20 리터씩 마시기도 한다. 아마도 겨우내 먹었던 고기의 독을 제거하는데 좋은 모양이다. 고기가 주식인 몽골인이 비교적 오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름에 주로 우유와 유제품을 상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의 ‘고시레’처럼 몽골인도 처음 짠 젖이나 음식의 일부를 ‘데지 우르구흐(дээж өргөх)’라 하여 천지신명에게 먼저 바친다. 우리 주변에서도 새 차를 사면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바퀴에 막걸리를 뿌리는데, 이 또한 무사고와 안녕을 기원하는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자연을 공경하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잘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전통문화이다.

  아이락을 소줏고리로 증류하게 되면 ‘시밍 아르히(шимийн архи)’를 만들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맹물처럼 별 맛이 없다. 그러나 홀짝홀짝 마시다보면 취해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르히’는 우리나라 ‘안동소주(아라히~알랭이)’의 기원이기도 하며, 그 어원은 고려 후기에 몽골을 통해 전해진 아랍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몽골 시대에 고려에 전해진 단어와 풍습도 많다. 예를 들면, 다루가치(daruγači 達魯花赤), 장사치 등 단어에 있는 ‘~치(~či)’, 절다말(зээрд морь 제르드 모리), 가리온말(халиун морь 할리온 모리) 등 말(馬) 이름과 지달(чөдөр 추두르) 등 마구의 명칭, 송골(шонхор 숑호르)매, 보라(бор 보르)매 등 명칭과 매사냥 문화, 철릭(тэрлэг 테를렉)이라는 옷, 신부의 연지곤지와 족두리, 은장도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한편, 조선 초에 꽃을 피운 의학, 수학, 천문학, 역학, 언어학 등 학문과 과학 기술, 기마사술(騎馬射術) 풍습, 갈비(хавирга 하비르가), 업진(өвчүүн 웁춘)살 등 고기부위 명칭과 육식문화 등도 고려 후기에 몽골을 통해 전해진 이슬람, 인도-티베트, 북방 유목민 세계와 교류하여 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에는 ‘Сайн санааны эцэс сүү, муу санааны эцэс хөө(사인 사나니 에체스 수, 모 사나니 에체스 후)’라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좋은 생각의 끝은 우유, 나쁜 생각의 끝은 검댕이’라는 뜻이다. ‘우유(сүү, 수)’는 흰색이기 때문에 좋은 것을 나타내지만, 재도 아닌 ‘검댕이(хөө, 후)’는 나쁜 것을 나타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말 중에 ‘똑같은 아침이슬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도 있다. 이런 생각은 유목민과 우리들 뿐 아니라 인류문화에 공통적인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