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라시아 물품 문명 문화사

세계 물품학의 최고 거점 연구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칼럼

column

[연구진 섹션]

불교는 물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

  •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1-02-16 10:43:36

    조회수826

불교와 물질문화 ⓵—불교는 물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


HK+사업단 HK연구교수 박연주


*이 글은 일본 불교 물질문화의 정신적 배경불교의 물질관과 중세 일본 불교의 물질을 둘러싼 담론, 동방학44(2021.2)에 실린 필자의 논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자세한 논의는 상기 논문을 참조.

 

  인도에서 발원하여 아시아 전체에 전파되었던 불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공유한 수많은 문화적 코드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콘텐츠’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가령 근대 이전의, 중국, 한국, 일본을 위시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며 특히 그 공통된 문화적 요소에서 빠질 수 없는 ‘한자(漢子)’ 사용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불교는 동아시아를 다른 문화권과 그 비주얼적 측면에서 뚜렷이 구분되게 만드는 독특한 물질적 문화(material culture)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평할 만하다. 동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는 무수한 불교사원들, 그 안의 법당이나 암자와 같은 건물들과 탑, 불상, 불화, 불단, 그리고 각양각색의 불교용품(佛具)들은 성스러운 가람 안, 승가의 현실을 넘어 속세 일반 민중의 삶의 양식에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물상들은 다른 불교문화권—가령 스리랑카나 태국과 같은—의 그것들과도 형태상으로나 그런 사물들을 둘러싼 종교적 행위의 양식상으로나 뚜렷이 구별되는 동아시아 불교 특유의 물질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만큼이나 ‘불교’라고 하는 종교, 철학, 윤리, 제도, 관습, 문화는 물질적인 것과 다양한 측면에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불교는 실상 어느 나라에서든지 화려하기 그지없는 물질문화를 꽃피워 왔고 불교 이전의 토착적인 종교와 풍습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쳐 나라별로 독특한 융·복합적인 물질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곧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무엇보다 불교는 그 근본적인 철학과 교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 물질적인 것에 대해 결코 관용적인 종교가 아니다.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성제(四聖諦)와 같은 불교의 핵심교의가 분명히 말해주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은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존재이며,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실재가 아닌 허상이므로 그것들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끊어야만 한다는 것이 불교 사상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 아래 원시불교는 각종 경전과 계율, 논서들을 통해 물질세계로부터의 연을 끊고 정신적 초월과 해탈을 성취할 것을 강조했다. 출가한 승려들에게는 물론이요, 일반 대중에게도 재물과 여자(육체적 욕망)는 집착을 낳게 하고 마음을 오염시키는 대표적인 악으로 설파되었다. 

  승가의 계율도 이러한 물질에 대한 부정과 비판적 의식이 매우 잘 투영된 채 형성되어서, 가령 중국에서는 원칙적으로 승려들의 소유물은 개인이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규모의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가령 바리때와 같은 공양그릇, 신발, 반짇고리—로만 한정되었다. 그리고 승려는 돈을 만져서도 안 되었으며 지극히 수수한 옷을 걸치는 것만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전이나 교리의 원론적인 얘기를 떠나 실제적인 면에서 불교의 실천과 수행, 의례, 또 이들을 둘러싼 관습 등을 보면 역설적이게도 사방에 온통 물질적인 것들 투성이인 것이 또한 불교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양한 연구조사 방법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무엇보다 중국에서 사원은 그들이 소유한 재화에 의존해서 운영을 했다는 것이며 승려들 또한 실제로는 경전이나 불상들에서부터 노예와 토지에 이르기까지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설령 승가의 규율이 강화된 곳이라 하더라도 대체로 승려 개인의 소유에 대해서는 엄격한 반면, 승가나 사원의 소유와 물질적 부에 대해서는 너그러웠다. 

  이렇게 보면 중국불교가 원래의 불교 정신을 망각하고 타락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물질적인 문화를 둘러싼 실상에 있어서는 중국불교가 더 타락한 것도, 원래의 인도불교가 더 청렴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발전한 불교적 물질문화—개별적인 물품들에 대한 생각과 태도까지 포함하는—는 사실 대부분 인도에서 전해져 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도에서나 중국에서나 불교 사원의 경제적 운영에서 중요했던 것이 신도들의 공양(供養) 물품이었다. 바로 이 지점, 즉 불교적 윤리의 수행을 위한 신자들의 헌납이라는 실천이야말로 물질에 대한 불교의 이중적이고도 양가적 태도를 빚어내는 요인 중 하나였다. 앞에서 말한 대로 초기 불교의 경전들은 물질에 대해 악업을 만들어내는 원인이라고 하며 경계했지만, 바로 그 똑같은 ‘업’의 교의를 토대로 물질의 소유와 사용을 장려하는 것이 또한 공양을 통한 ‘공덕(功德)’과 선업 쌓기라는 불교 윤리의 또 다른 논리였던 것이다. 이는 매우 복잡 미묘한 문제이긴 했으나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타협적 종교윤리의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출가해서 승려가 되어 불교의 교학과 수행을 연마하는 것이 불가능한 평범한 신자들을 위해 마련된 구원의 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만물의 공허함과 물질적인 것의 임시방편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임시방편이었다. 사람들은 더 위대한 선(善)을 위해, 부처님을 위해, 공덕을 쌓기 위해 임시방편의 물품 공양을 계속했고 이러한 임시방편의 구실은 점점 더 많은 재물을 헌납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흐리게 했다. 

  게다가 이러한 공양이 결국 불법의 융성과 전파를 도와 더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에는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경전들이 충분히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예로 『법화경(法華經)』과 같은 경전에서는 첫 장부터 석가모니가 신실한 자들을 향해 탑에 금, 은, 수정 등의 보석들을 공양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음식, 옷, 돈 등과는 달리 이러한 장식물들은 승가나 사원의 재정운영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경배하는데 쓰이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화엄경(華嚴經)』과 같은 경전에도 상세히 묘사가 잘 되어있는 부처님과 부처님 나라의 온갖 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장엄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찬과 경배의 대상이었다. 주목할 점은 그러한 물질 공양이 실제로 적극적으로 행해졌을 뿐 아니라 또 그러한 공양을 하는 신도들은, 계율을 잘 지킨 자들과 함께 물질적 부로써 보답받는다는 설교의 논리였다. 이렇듯 중국에 있어서 불교의 물질에 대한 태도는 많은 면에서 양가적이고 모순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 태도의 공존 원인이 중국이라는 환경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공자나 장자를 위시하여 발전한 대표적인 중국 사상에서도 청빈은 중요한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발전한 불교문화를 보더라도 이들 나라에서의 불교가 물질적인 것에 비관용적이었다고 결코 볼 수 없을 정도로, 불교는 어디에서나 화려한 물질의 위용이 돋보이는 문화를 발전시켰던 것이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불교의 이중적 태도는 일본의 경우에 있어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불교의 근본 교의에 근거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경계하는 내용은 일반 민중의 교화를 위한 불교설화에서도 빈번히 발견되는 주제이다. 그런 한편 공양과 보시를 위한 물질의 사용과 그 권장 또한 중국의 경우에서도 본 바와 유사하다. 승려들의 정신적인 서비스에 대한 신도들의 물질적 보답이라는 시스템이 있었고, 거기에는 공덕이라고 하는 불교의 실천적 개념이 그 시스템의 핵심원리로 작용했던 것이다. 특히 현세이익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는 일본 불교에 있어서 물질은 사람들을 보다 심오한 차원의 정신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종교를 홍보하는 수단 즉, 방편으로서 인정되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중세시기 불교를 둘러싼 몇 가지 특수한 종교문화적 요소들의 영향으로 인해 불교의 물질관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전개되었고 결과적으로 현대까지도 이어진, 불교에 관련된 다양한 물품의 발전을 보게 되어 그 물질성이 뚜렷이 눈에 띄는 특유의 불교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한 종교문화적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 한 가지로서 들고 싶은 것이 중세 초기 일본의 사회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한 ‘말법(末法)’사상의 유포와 성행으로, 이는 다른 종교문화적 요소들에 대해서도 그 환경적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말법이란 불교가 인류 역사의 시대를 나누어 보는 방법에서 쓰이는 용어로, 부처님의 열반을 기준으로 인류의 시간을 세 시기로 나눈 시대구분상 가장 마지막 시대를 가리킨다. 즉, 부처님이 열반에 든지 500년 혹은 1000년 이내는 정법(正法)의 시대, 그리고 그 다음 1000년간은 상법(像法), 그리고 그 후 만년동안이 말법의 시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쇠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말법의 시대에는 진정한 깨달음이 불가능하여 사람들은 구제될 길이 없고 소위 세계의 종말과 같은 말세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가 성행한 곳이라면 말법의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지만 특히나 일본에서는 그 현상이 심했다. 대략 11세기 중엽부터 말법의 시대가 시작한다는 믿음이 헤이안 시대(794-1185)를 통틀어 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갔고 특히 헤이안 말기에 각종 자연재해가 수차례 발생해 민생이 피폐해진 데다가 온 국토가 내전에 휘말리게 되면서 말세가 가까워 왔다라는 공포감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말법의 프레임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경전도, 교리도, 수행도 아무런 효력이 없는 위기의 시대에 중생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특단의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많은 승려들은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수행이나 실천은 효력이 없으니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효력있는 방법을 새로 만들어 내거나 혹은 기존의 것을 수정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새로운 불교 종파들의 민중에 대한 관심과도 맥락을 같이하여 좀 더 쉽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수행의 방법을 창안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한 마디로 전에는 다소 부수적이었던 방편의 개념이 이제 하나의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으로까지 격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공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이제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을 고안해내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방편은 더 이상 방편이 아니고 혼탁한 말세에 중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방편의 시대’에 공양이나 보시를 위시한 물품의 사용이 더욱 성행하고 그와 함께 불교 측의 물질관이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변화였다고 하겠다. 이 시기 일본 불교에 대한 다수의 연구들이 지적하듯, 확실히 일본에서 말법사상은 중세 초기부터 불교가 물질을 대하고 다루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이때 이래로 일본에서 많은 불교 관련 문헌과 기록들이 종교적 물품과 물건의 중요성과 다양한 용도,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현세적, 실용적 이익에 대해 강조하며 논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물질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태도를 견지했던 일본 선종(禪宗)의 문헌에서조차도, 부처가 그 제자 마하가섭에게 자신의 법의를 선물한 것을 본보기로 들어 가사(袈裟)를 전수의 증표이자 법에 대한 믿음의 구현으로서 미화시킨 것을 보면 확실히 일본 불교의 물질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일본 불교의 문헌들에서 보이는 물질관을 요약하자면 대체로 불법이 구체적인 사물—물론 부처님이나 교리, 승려 등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물건—에 구현되어 있고 또 이 물건들을 통해 불법이 전파된다는 생각이 그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법의 전파는 그러한 물건을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고 믿는데, 더구나 불구(佛具)는 일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성스러운 물건들에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힘이 담겨있고, 그렇기에 이런 물건들을 더 많이 가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추후 이러한 긍정적 물질관은, 종교물품의 성스러운 힘을 둘러싼 개별적 서사를 이야기하는 차원을 넘어 본질적으로 만물에 내재한 구원력을 논의하며 물질을 교학적인 관점에서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 존재론적 의미를 설명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간결하지만 이 글을 통해 불교의 물질에 대한 태도과 그 변화, 특히 불교적 물질관의 근본적 양가성,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학술문화적 현실에 따라 그 물질관이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한 흐름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불교가 물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뤘는가에 대해 알게 되면, 혹여 나중에라도 접하게 될 불교용품 각각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그런 논의를 통해  불교의 물질문화, 즉 구체적으로는 불교용품을 둘러싼 역사나 거기에 담긴 의미에 대해 알게 된다면 현재의 물질문화, 나아가 우리가 아주 가까운 미래상으로 그리는 시대의 인간의 소비문화와 그 핵심적 사고체계를 이룰 물질관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것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