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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약 청심환(淸心丸), 동유라시아인을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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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0-12-02 1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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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약 청심환(淸心丸), 동유라시아인을 홀리다


HK+사업단 단장 서인범


  코로나19로 사람들의 하늘길 바닷길은 막혔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고 활발하게 교역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인 미국의 화이자나 모더나, 그리고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는 인류의 재앙을 구제하려고 경쟁적으로 백신을 개발하여 긴급사용 승인 허가를 받고 있다. 접종이 개시되었다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인류를 구제하는 약품이 전 세계에 유통되는 것이다. 문득 조선의 청심환이 떠올랐다. 전 세계에 퍼진 약품은 아니지만 중국‧몽골‧위그루‧일본‧유구(琉球. 현 오키나와) 등 동유라시아 세계에 명성을 떨친 의약품이다. 중국을 여행하게 되면 반드시 북경 동인당(同仁堂)에 가서 우황청심환을 샀다. 청나라 강희 8년(1699)에 창건된 유명한 한약방이다. 진열된 다양한 약품 중에 손길이 가는 품목의 하나가 우황청심환이었다. 저렴한 것은 한 갑에 25유엔(당시 환율이 130원이었으니 3,250원하는 셈), 조금 비싼 것은 70유엔(9,100원), 200유엔(50,0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더 고가의 청심환도 진열하고 있었다. 이 약을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드리면 서랍 속에 소중하게 간직했다 가슴이 진정되지 않을 때 꺼내 드셨다고 한다. 약의 효능은 심장의 열을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한다. 처방 그대로 효과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약을 드시면 편안해 하셨다. 마치 플라시보 효과라도 있는 듯이.


  사실 우리가 중국에서 구입한 우환청심환보다 더 유명한 것이 조선의 청심환이다. 조선의 명약이었다. 허준(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삼(人蔘)·감초(甘草)‧대두환권 등의 가지각색의 약초와 우황(牛黃)·사향(麝香)·서각(犀角) 등의 동물성 약재, 주사(朱砂) 등의 광물성 약물 등 모두 30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청심환은 중풍이나 정신병 치료에 쓰는 약재였다. 조선시대 의관(醫官) 양예수(楊禮壽. ?~1597)가 역대 의학자들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인 『의림촬요(醫林撮要)』에는,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며 정신이 어리둥절하고 입이 헐며 목구멍이 마르는 것을 치료한다. 인삼‧울금(鬱金)‧생지황(生地黃) 등을 갈아서 꿀로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만한 크기의 환을 만들어 한 번에 10알씩 잠잘 무렵에 맥문동 달인 물〔麥門冬湯〕로 먹는다.” 효능에 대해서는 “심열(心熱)이 있어서 정신(精神)이 혼미하고, 미친 말〔狂言〕을 하며, 잠들어도 편안하지 못한 증상을 치료한다”고 나와 있다. 구체적으로는 심장의 열을 제거하고, 가슴 두근거림이나 어지럼증 등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때 복용한다. 


  일찍이 청나라 칙사(勅使)가 조선에 들어와 청심환 두어 제(劑)를 청하자 한 호조 낭청(戶曹郞廳)은 산삼을 넣은 우황청심환은 귀한 것인데다 빠른 시일에 제조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변하였다. 산삼을 넣은 청심환이 귀한 물품이었던 것이다. 


  영조 41년(1765) 자제군관 신분으로 청나라 북경에 들어간 홍대용(1731~1783)은 그의 저서 『담헌서(湛軒書)』 ‘건정동필담(乾淨衕筆談)’에 중국의 청심환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건정동(乾淨衕)의 객점 천승점(天陞店)에서 엄성(嚴誠)과 반정균(潘庭均)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는 이 두 문인의 종자에게 부채와 청심환 2개씩을 선물하였고, 중국인의 청심환 애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청심환은 자못 기이한 효능이 있고 품질도 여러 등급이어서 가짜가 반이 넘는다. 그 진짜는 궁제(宮劑)에서만 나오는데 이것이 가장 쓸 만하다. 북경 사람들이 이 물건을 보배로 여겨 그 가짜임을 잘 알면서도 구하기를 마지않으니 아마도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북경 사람들이 조선 청심환을 보물로 여기고 있고, 진품이 아님에도 선호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청심환을 귀신같이 병을 치료하는 약품으로 인식하였다. 그 탓에 사방에서 구걸하는 자가 몰려들었다고 했다. 다만 시중에 파는 것은 그다지 약효가 좋지 않았다. 가짜도 많기도 했지만, 조선에서 생산되는 인삼과 우황의 품질이 뛰어나 신뢰할 만 했다고 여긴 탓이었다. 


  순조 16년(1816)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정사 이조원(李肇源. 1758~1832)은 ‘청심환가(淸心丸歌)’라는 시(詩)에서, 운남(雲南) 지역의 거인(擧人. 과거시험 3단계 중 성(省)에서 실시한 시험에서 합격한 자)은 진품을 얻었다 자랑하고, 사천(四川)의 문사는 양질의 청심환을 얻으려고 한다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중국에서 청심환은 신단(神丹)이었던 것이다.  

  연행사들은 청나라 황실, 고위 관료만이 아니라 통사‧승려‧문지기‧하인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에게까지도 청심환을 선물하였다. 아니 중국인들이 먼저 요구할 정도의 인기 만점인 인정물품(人情物品)이었다. 한번은 조선 연행사(燕行使)들이 산해관의 망해정(望海亭)을 관람할 때 이곳을 지키는 관리가 문을 잠그고는 청심환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선물하지 않자 문지기는 골을 내고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사신은 귀국 시에 서른 알이고 스무 알이고 많이 주겠다고 하자 그제야 문을 열어주었다. 연행사 일행이 역참(驛站)에서 잠시라도 중국인과 말을 주고받으면 그들이 환약(丸藥)을 달라고 해서 대단히 괴로웠다고 한다. 헌종 14년(1848) 동지사의 일원으로 북경에 들어간 이유준(李有駿)은 청심환 요구하는 모습을 비난조로 읊었다.


때때로 와서 청심환 구걸하니                         有時來乞淸心藥

다만 그 진귀함을 좋아할 뿐, 부끄러움은 모르네        只愛其珍不解羞

  부끄러움보다는 약효의 신령함이 중국인들의 마음에 더 다가갔던 탓이리라. 이처럼 청심환은 그 약효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선물용이나 사신들이 외교를 수행해내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교를 성공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물품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홍대용은 몽골 통역인 이억성(李億成)과 몽골 추장을 찾아갔다. 그는 몽골왕의 종친(宗親)으로 관직은 1품이었고, 활쏘기, 말 달리기에 능해 장수가 된 인물이었다. 이억성은 그에게 청심환 두 알을 주자, 몽골 추장은 웃으며 받고는 수작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조원의 ‘청심환가’에는 회자국(回子國), 즉 위그루 사람들도 연행사를 볼 때마다 청심환을 달라고 손을 내밀고, 유구 사신들은 오래전부터 보배로운 약재라고 들었다며 사례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조선시대 청심환은 중국인은 물론 몽골인‧위그루인‧유구인의 마음을 홀리는 명약이었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몽골 등지로 퍼진 청심환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다. 임란이 끝나고 교토와 도쿄에 통신사가 파견되었는데, 사신들이 가지고 간 선물 목록 중에 청심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숙종 8년(1682) 막부(幕府)의 봉행(奉行) 등의 별단(別單)에 ‘세 종실(宗室)과 집정(執政) 몇 사람에게 세 사신이 보내 주는 물건이 여러 가지인데, 청심원(淸心元) 등의 물건은 강호(江戶, 즉 도쿄)의 관인(官人)이 쓰는 것이 아니니, 그 밖의 매[鷹]·삼(蔘)·호피(虎皮)·표피(豹皮) 등은 괜찮다’는 답변을 듣는다. 일본 막부의 요구로 인해 청심환은 선물 목록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순조 10년(1810) 예조에서 통신 재판 차왜(通信裁判差倭)의 강정 절목(講定節目) 및 통신사(通信使)의 행해얄 사건을 아뢰었다. 마지막 12회차 통신사의 파견이다. 역지 통신(易地通信)으로 두 나라 사이에 약조(約條)를 두어 영원히 지켜서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대마도 태수, 즉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인삼‧호피 등의 물품 외에 청심원(淸心元) 10환(丸)이 보내줬다. 


  청심환은 약재만이 아니라 화폐 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정조 15년(1791) 연행사를 따라간 김정중(金正中)이 봉황성에 들어갔을 때 중국인 가게 주인이 방값을 내라고 급히 졸라대자, 백지(白紙)‧부채와 청심환 20알을 건넸던 적이 있다. 화폐로 인정될 정도로 가치가 매겨져 있었던 것이다. 조선 선조연간의 청심환 가격은 1개당 3전(錢)에 불과하였지만, 약을 파는 자는 1냥을 받았다고 한다. 연행사들이 돌아올 때 청심환 한 알로 몽골 말 1필을 바꾸어 왔다고 하니 그 가치를 짐작할 만하다. 현재 한국‧중국‧일본에서 판매되는 청심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대표적인 성분은 사향이다. 인터넷을 조사해보니 한국에서는 한 알에 15,000원에서 30.000원, 일본에서는 한 알에 30,000원~50,000원을 호가하니 상비약으로써는 꽤나 비싼 편이다.


  오늘 2020년 12월 2일(목요일)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여 온 국민이 불안을 느끼고 행동이 움츠린 상황 하에서 고3 학생들의 마음과 발걸음은 한층 무거우리라. 사회적 현상일까. 이날을 전후해 우황청심환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본래 『동의보감』의 약효와는 다르지만, 최근에는 심리적 안정제로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은 고3 학생들에게는 유효한 약품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동유라시아인들의 마음을 홀려 그들이 애타게 갈구했던 조선의 신약. 어쩌면 만병통치약으로 여겼을 청심환을 오늘 시험을 치루는 고3 학생이나 재수생들에게 신령한 약효가 나타나 고득점을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