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1-10-20 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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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와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
HK+ 사업단 HK연구교수 최원재
데이터 분석이 미래 교육과 직무 역량의 선두에 서게 된 지금 문학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소재는 시(詩)와 장미꽃이다.
조선에서도 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호품이었다. 15세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당시 인기 있던 꽃과 나무의 목록이 들어있다. 목록에는 소나무(老松), 향나무(萬年松), 대나무(烏班竹), 국화(菊花), 매화(梅花), 난혜(蘭蕙), 서향화(瑞香 花), 연꽃(蓮花), 석류꽃(石榴花), 치자꽃(梔子花), 사계화(四季花), 산다화(山茶花), 자미화(紫微花), 왜철쭉(日本躑躅花), 귤나무(橘樹) 등 16종의 화목이 소개되어 있다.
보통 조선에서는 사군자인 매, 난, 국, 죽이 사대부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당시의 선비들은 사군자가 아니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장미의 인기가 우리나라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신라 시대 신문왕의 요청으로 설총이 지었다는 「화왕계(花王戒)」의 장미가 우리나라의 첫 번째 장미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화왕계(花王戒)」의 장미 부분이다. 이 장미가 어떤 품종이었을까?
忽有一佳人 홀연히 미인 하나
朱顔玉齒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鮮粧靚服 곱게 화장하고 멋지게 옷을 입고
伶俜而來 사뿐사뿐 걸어와
綽約而前曰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妾履雪白之沙汀 첩은 눈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對鏡淸之海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보며
而沐春雨以去垢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快淸風而自適 상쾌한 바람을 쐬면서 유유자적하는
其名曰薔薇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 한시 「장미(薔薇)」에 묘사된 장미를 보자. 이 장미는 어떤 품종이었을까?
穠艶煌煌綠暗間 초록빛 사이에 은밀히 곱고 짙게 휘황한 것이
巧粧金粉媚嬌顔 금분으로 어여삐 꾸며 요염한 모습이라 사랑스럽도다.
莫因帶刺爲花累 가시가 있다고 해서 꽃에 누가 되지 않는다.
意欲防人取次攀 사람이 꺾어 손에 드는 것을 막으려 함이라.
조선의 서거정도 「황장미(黃薔薇)」를 노래했다. 황장미는 어떤 품종이었을까?
惆悵紅桃送爾歸 서글피 빨간 복사꽃 널 보내고 돌아와 보니
靑春恰恰到薔薇 푸르른 봄의 기운 마침 장미로 옮겨갔다.
黃娘睡起嬌無力 황랑이 졸다 깨어 힘겹게 교태부리고
已妬佳人金縷衣 이미 아리따운 미인 금루의를 시샘한다.
김시습도 다음의 시에서 장미를 노래했는데 그 이름이 사계화란다.
「東川寺 看四季花」(동천시 간사계화)
日暖風和春晝長 따뜻한 볕과 바람 봄날이 늘어지고
膩紅千萼透群芳 천 개의 이파리 만 개의 받침이 짙붉게 나부낀다.
南方不借栽培力 남방이라 애써 기르지 않아도
晴日煦嫗卽艶陽 엄마 품속처럼 윤나고 눈부시다.
처음 소개한 『양화소록』 목록에 소개되는 사계화가 바로 장미과 꽃이다. 조선 시대까지는 사계화, 월계화, 장미라는 이름이 혼재되어 쓰이는 양상을 보였다. 지금처럼 교배종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종(species)과 속(genus)이 섞여 불렸을 가능성이 크다. 위에서 이규보와 서거정이 장미라고 부른 것은 황색, 홍색의 장미 속 식물일 것이다. 18세기에 『화암수록』을 쓴 유박이 사계화, 월계화, 장미를 구분했는데, 이규보나 서거정의 시 제목이 장미로 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서거정이 장미의 색깔을 황색으로 규정한 것이나 시의 내용에 나타나는 ‘금색’을 보면 이들이 본 것은 오늘날 목향장미로 알려진 Rosa Banksiae Aiton으로 추측된다. 일면 찔레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으나 유박도 장미는 원예용이라고 하여 찔레꽃과는 구분했던 것처럼 찔레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사계화나 월계화는 어떤 꽃이었을까?
유박은 『화암수록』에서 사계화는 사계절 그믐에 핀다고 해서 이름이 사계화라고 전했다. 그리고 사계화 중에서 빛깔이 엷은 것을 월계화라 부른다고 했다. 『산림경제』에서 『양화소록』을 인용한 기록에 의하면, “사계화는 세 가지가 있는데 붉은 꽃이 3월(봄)·6월(여름)·9월(가을)·12월(겨울) 네 번 피는 것을 사계화라 하고, 꽃 빛깔이 분홍이며 잎사귀가 둥글고 큰 것을 월계화라 하며, 푸른 줄기가 덩굴로 뻗어가며 봄·가을에 한 번씩 꽃이 피는 것을 청간사계(靑竿四季)라 한다.”라고 하였다. 김시습의 시에서도 ‘천 개의 이파리, 만 개의 받침’이라고 했으니 덩굴을 이루는 장미과 식물일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사계화는 Rosa chinensis Jacq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화왕계」에서 말하는 장미는 어떤 품종이었을까? 노래 속에서‘흰 모래밭을 밟고 바다를 보며’라고 했으니 바닷가에 서식하는 장미과 식물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꽃은 해당화 Rosa rugosa Thnub다.
이번 칼럼에서 간단히 보여준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는 시라는 문학 데이터에서 보이는 단서를 찾아 장미의 품종을 찾는 과정이었다. 『양화소록』, 『화암수록』은 아직 디지털로 변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필자가 시 속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연관 사진을 찾기 위해서 활용한 디지털 리터러시는 웹사이트 두 곳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다. 디지털 리터러시에 앞서 성공적인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를 수행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평소 관심 있게 보는 데이터에 대한 도메인 지식과 데이터 간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유추하려는 지적 호기심이다. 이번 칼럼의 내용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오늘 프로그래밍하면 한국의 시와 장미에 대해서 전 세계의 모든 AI는 적어도 여러분이 오늘 이해한 만큼은 알게 된다. 그리고 AI가 흡수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 내러티브는 인문기술자들에 의해서 계속 수행중이다. 여러분들도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