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실러 가세, 돈실러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실러 가세”
옛 상인들이 짐 보따리 제일 깊은 곳에 꼭 싸매어 둔 주요 교역품에는 굴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굴비는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랏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이기도 하며, 여타 건어물 과는 달리 생선의 내장 같은 것들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 원형 그대로 불어오는 해풍에 말린 어물이라, 제수용(祭祀用)으로도 인기가 좋다. 밥 한 숟갈에 반찬으로 굴비를 한 번 쳐다보았다는 유명한 자린고비 설화에도 등장하는 등 우리 국민 사이에서 아주 친숙한 생선이다. 필자는 이 굴비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 중 에서도 영광 굴비는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겠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靈光)은 전라남도의 북서부 끝 쪽 해안가에 위치한 고장이다. 물고기가 많은 천혜의 어장인 칠산 바다와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영광은 예로부터 ‘옥당골’이라 불릴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지방으로 발령받는 고을의 수령들이 황해도의 안악이라는 지방과 함께 가장 부임지로 선호했던 곳이 영광군수의 직위였다. 이 곳 영광에서도 특히 전국 굴비생산량의 90%이상을 생산해 내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전남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 법성포 마을이다.
만일 이 마을에 방문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짬을 내 방문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필자는 운이 좋게도 영광에 사는 친구가 있어 수 년 전 여름, 이 마을에 들러 본 적이 있다. 굉장히 한적하며 평화롭고 아름다워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 곳이었지만, 오래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몇몇 어선 때문인지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마을이었다. 나중에 그 마을의 어르신께 들어 알게 되었는데, 사실 70년대 초 까지만 하더라도 도화가 만발하기 시작하는 3월경부터, 한식(寒食), 그리고 곡우(穀雨)를 지나는 사이에 수백척에 달하는 어선이 모여 북적대는 곳이 바로 필자가 방문한 법성포 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중국해에서 흑산도를 통과하는 사이에 안강망선단과 기선 저인망 등이 조기의 씨를 말릴 정도로 훑고 가버려 지금은 조기가 매우 드물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예전엔 봄에 칠산 앞바다에서 직접 잡아 법성포에서 말린 조기만을 진짜 영광굴비로 쳐주었지만, 현재는 잡힌 위치에 상관없이 타 지역에서 잡힌 배란기의 참조기를 법성포에서 해풍으로 말리기만 해도 “영광굴비”의 칭호를 붙인다고 한다. 필자가 느낀 법성포에서 느낀 알 수 없는 슬픔은 어쩌면 씨가 말라버린 칠산 바다 조기들의 한은 아닐까?
그러나 영광 법성포 굴비가 타지역의 조기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영광 굴비의 명성에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고 법성포 사람들은 주장한다.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이 한 말이 있다. “조기는 같아도 굴비는 다르다.” 이는 영광 굴비의 특별함이 바로 조기 자체의 특별함이 아닌 그들 만의 독특한 염장법에 있다는 말이다. 영광에선 3년 넘도록 보관하여 간수가 다 빠진 천일염(天日鹽)으로 조기를 염장한다. 그래야 소금자체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맛을 없앨 수 있고 염도도 낮아지기 때문에 불쾌한 짠맛도 덜하다. 하지만 영광에서 사용하는 이 염장법은 조기의 크기에 맞추어 간하는 시간을 조절해야 하며 손이 너무 많이 가기에 법성포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는 까다로운 염장법이다. 이 염장법은 섭장이라 불리며 지역사람들은 외부인에게 염장법을 상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아무리 조기가 영광 앞 바다에서 더 이상 잡히지 않아 타 지역의 조기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의 주장처럼 역시 영광은 영원한 굴비의 고장이었다. 영광에서 맛본 참조기로 끓여낸 얼큰한 조기 매운탕과 뜨거운 태양 아래 지쳐서 입맛까지 잃은 필자의 심신을 달래 주고 입맛을 되찾아 준 보리 굴비는 가히 일품이었다. 조기의 야들야들한 살은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다. 특히 영광 토박이인 친구의 지도 하에 보리굴비 하나를 주욱 찢어 밥을 찬 물에 말아 함께 먹어 보았는데 짭잘하면서도 적당히 기름진 조기 살의 감칠맛과 물에 만 밥의 조화에 “우와” 소리가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이런 맛있는 굴비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조기는 사람들의 기를 끌어 올려주는 효험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도울 조(助) 와 기운 기(氣)를 사용해 ‘조기’ 라고 불려왔다. 이 조기를 3년 이상 묵은 소금으로 간을 해 불어오는 해풍에 말리면 굴비가 된다. 일반적으로 ‘굴비’라는 명칭의 기원을 고려시대의 이자겸(李資謙)과 연결 짓는데 그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자겸(李資謙)은 고려시대 16대 예종 때의 문신(文臣)이다. 이자겸은 몇 차례나 인종을 독살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인종은 이자겸의 측근인 척준경을 이용하여 이자겸을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때 이자겸이 귀양을 오게 된 곳이 이 곳, 영광인데 이자겸은 우연한 계기로 간을 하여 말린 조기를 영광에서 맛보게 되었다. 이자겸은 간하여 말린 조기의 이름을 굴비(屈非)라 이름 짓고 인종에게 보낸다. 후세 사람들은 이자겸이 자신의 뜻을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간한 조기의 이름을 ‘굴비(屈非)’ 라고 지어 보냈다고 한다. 비록 귀양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결코 비굴하게 굽히고 살지는 않겠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많은 자료와 논문을 비교해 본 바, 이는 후세 사람들의 잘못된 추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나 조선의 그 어떤 역사서나 기록에도 ‘굴비(屈非)’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이와 같은 명칭은 누군가 이자겸과 인종의 관계를 연상해 내어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명칭이란 것이 그러하듯,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 그것이 명칭이요, 그 명칭의 배경이 되는 법이다.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 이야기가 역사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내칠 필요는 없다. 다만, 굴비가 되는 과정에서 등이 필연적으로 굽어지는 조기가 이자겸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 라는 의지를 나타낸 다는 것은 어색하다. 실제 말린 조기의 명칭은 고려 말 문신인 이색의 오언율시에 현대의 굴비가 ‘건석수어’로 기록되어 있는 등의 기록으로 보아 ‘석수’ 또는 ‘건석수어’ 라고 한다.
역사 속 이자겸만이 굴비를 맛본 것은 아니다. 왕실과 권문세도가들은 굴비를 아주 좋아했으며 특히 성종의 셋째 아들인 안양군의 현손(玄孫), 이응희(李應禧)는 ‘옥담시집(玉潭詩集)’의 만물 편에서 ‘조기(助氣)’를 말려 밥반찬으로 먹으면 으뜸’ 이라며 극찬하였고, 사간원 대사간을 역임한 정조 때 인물인 이의봉(李義鳳) 역시 ‘고금석림(古今釋林)’에 ‘사람의 기를 돋우어 준다고 하여 사람들이 조기라 불렀다’ 고 하였다. 전라감사직을 수행한 순조 때 인물인 서유구는 조기를 석수어(石首魚) 라고 하지 않고 한글로 ‘조긔’라 표현했는데 ‘조긔는 소금에 절여 포로 만들어 먹었는데 가장 맛이 잇는 고기’ 라며 극찬을 한 바 있다.
이렇게 흥미로운 배경을 가진 굴비가 조선왕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권문세도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어물이 된 것은 바로 법성포에 한양과 개경으로 곡식을 나르던 창(倉)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성포에는 부용창(芙蓉倉)이 있었는데 세조 때부터는 이 부용창이 ‘법성창’으로 개명하고 조선 최대의 조창(漕倉)이 되었다. 영광은 왕실에 바쳐야 하는 진상품으로 영광 굴비를 바쳤다. 이 시절 조선의 조정은 양반가와 대신들에게 얼음, 반찬, 봉여 등을 지급하였는데 이는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 중 남는 일부를 대신들이 나누어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주기적으로 영광굴비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굴비는 영광뿐만 아니라 충청도에서도 바쳐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 두 지역의 굴비에 대한 맛의 비교가 이루어졌다. 이 두 지역 굴비의 맛을 비교한 대신들은 영광 굴비의 맛이 훨씬 낫다고 판단하여 제수용품으로 영광굴비를 올리는 등 영광굴비의 품질과 맛을 인정하게 되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5월 말, 어느덧 살을 에는 듯이 추웠던 겨울도 지나고, 생명이 태동하는 봄도 지나 무더워지기 시작하여 여름의 초입에 다다른 것을 실감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금 증가하는 추세 속에 전 국민이 지쳐 있는 상황 속에서 무더위가 찾아온다면 우린 한층 더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퍼 지기도 한다. 하지만 힘을 내 보자. 필자는 무더운 여름 법성포에서 맛본 보리굴비 덕에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시원한 물에 밥 한 공기 말아 보리굴비 한 마리 뜯고, 두툼한 굴비 한 마리 새콤달콤한 양념 발라 지글지글 구워 내 맛있게 먹으면서 그 순간만이라도 세상 걱정을 떨쳐보자. 조기가 가지는 말 뜻처럼 분명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