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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 그 알싸함에 사로잡히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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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6-01-05 13: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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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 그 알싸함에 사로잡히다 Ⅱ



HK + 사업단 HK연구교수 남민구



  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언제부터 정향을 사용해 왔을까? 한반도 고대사를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정향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삼국시대에 정향을 사용하였다는 흔적을 완전히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작성된 문서를 통하여 한반도 출신 인물이 정향을 교역하였다는 흔적은 발견할 수 있다. 그 문서는 752년 작성된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이다. 이는 스스로를 경덕왕(景德王)의 아들이라 주장한 김태렴(金泰廉, ?~?)이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로부터 일본 귀족들이 구입하고자 하는 물품을 품목으로 작성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정향을 의미하는 ‘정향(丁香)’과 ‘정자(丁字)’라는 품목이 적혀 있다. 추측컨대 김태렴은 어딘가에서 구입한 정향을 일본 귀족들에게 다시 팔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태렴 일행이 정향을 어디에서 구입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사진] 정향


  고려시대에는 송(宋)과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 등과의 교역을 통하여 정향을 구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라도는 토산품으로서 정향을 조정에 진공하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는 정향이 실제로 전라도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해외 교역을 통하여 전라도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송의 황제가 고려 국왕에게 보낸 약재를 통하여서도 송과 고려 사이에 정향의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종(文宗) 33년(1079) 7월, 송이 내전승제(內殿承制) 왕순봉(王舜封), 한림의관(翰林醫官) 형조(邢慥)·주도능(朱道能)·심신(沈紳)·소화(邵化) 등 88명을 보내어 100여 가지의 약재를 병에 걸린 문종에게 보내었다. 이 약재 가운데에는 ‘광주정향(廣州丁香)’도 포함되어 있다. 광주정향이 실제로 광주에서 생산된 것인지 아니면 광주를 통하여 들어온 동남아시아산 정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송을 통하여 고려로 정향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듬해인 문종 34년(1080) 동번의 난을 평정한 것에 대한 포상으로 동지중추원사 최석(崔奭), 병부상서 염한(廉漢), 좌승선(左承宣) 이의(李顗)에게 정향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정향이 한반도에 유입되었다는 기록이 더욱 빈번하게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15세기 초 세종(世宗)의 즉위 시기에 일본 각지로부터 정향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 이후로는 정향 수입이 증가하여 성종(成宗) 시기에 이르면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정향에 대한 수요 자체는 적어 정향은 많이 수입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종 25년(1494)에는 정향 5근에 정포 1필일 정도로 비쌌다. 반대로 일본측에서 조선측에 정향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동문휘고(同文彙考)』 1642년의 문서에 의하면, 대마도주(對馬島主) ‘평의성(平義成, 소 요시나리宗義成)’이 약재 구입을 청하는 서계(書契)에 정향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정향은 조선시대에 주로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기록들은 조선 정부와 외국 정부와의 기록을 통하여 드러날 뿐 민간의 기록에서 정향의 거래에 관한 기록이 빈번히 등장하지는 않는다. 조선은 명(明)과 청(淸)의 정책에 따라 민간인의 해양 교역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을 실시하면서 해상 교역에 대한 감시가 비교적 철저하였기 때문에, 정향과 같은 외국산 약재가 조선 사회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정향이 완전히 낯선 물품은 아니었다. 정향은 귀한 약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 약재였다. 일례로, 정향 등 10가지 향재를 혼합한 합향(合香)인 부용향(芙蓉香)은 의례, 방향, 방충, 의료 목적 등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