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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 그 알싸함에 사로잡히다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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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6-01-05 13: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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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향, 그 알싸함에 사로잡히다 Ⅰ



HK + 사업단 HK연구교수 남민구


  바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으레 마라탕이 생각날 때가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나 이따금 찾아 먹는 훠궈에서 느꼈던 그 알싸함과 얼얼함. 고추가 주지 못하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마라는 한때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이제는 마라로 만든 요리가 외식 요리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라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라가 주는 ‘향’과 ‘통증’일 것이다.


  이러한 마라와 같은 매력을 지닌 식재료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정향(丁香)이라고 하는 향신료이다. 이름만 봐서는 한약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 식재료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게 흔하게 소비되는 물품은 아니었다. 정향은 영어로 ‘clove’라고 하는데 이 말은 ‘못’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clāvus에서 유래되었다. 말 그대로 둥근 머리에 기다란 몸통을 가진 못의 모습을 가진 이 식물은 원산지가 인도네시아 말루쿠제도(Maluku Islands) 혹은 몰루카제도(Molucca Islands)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곳의 이름은 향료제도(Spice Islands)라고도 한다.


  정향나무는 8~12m에 이르며 나무의 꽃봉오리를 가지고 정향이라 부른다. 꽃잎이 1~2cm 정도일 때 수확하는데, 동아시아에서는 정향의 꽃봉오리를 암수로 구분하였다. 흔히 ‘정향’이라는 것은 숫꽃봉오리를 말하며, 한자로도 웅정향(雄丁香), 공정향(公丁香)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말리면 ‘못(丁)’과 같은 형상을 하기에 정향이라고 불렸다. 한편 암꽃봉오리도 말려 약재로 사용해 왔는데, 마치 닭의 혀와 같은 모습을 하기에 계설향(鷄舌香)이라고 하며 ‘암정향’이라는 뜻의 자정향(雌丁香), 모정향(母丁香)이라고도 한다.


[그림] 정향나무


  인류가 정향을 채취하고 교역한 역사는 상당히 길다. 기원년 전후로 정향은 인도에 알려졌으며, 2세기에는 중국과 로마에도 전해졌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향이 재배되는 지역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18세기 말 정향나무가 동아프리카의 잔지바르(Zanzibar)에 이식되기 전까지 정향은 오로지 말루쿠제도에서만 생산되었다. 이 때문에 역사에서는 여러 세력 사이에서 발생한 정향을 둘러싼 각축전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된다.


  한편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이 저술한 『본초강목』에는 정향이 중국 남부, 베트남,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나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정향이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유통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명대 『동서양고(東西洋考)』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여러 섬과 베트남 남부에서 정향이 생산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시암과 류큐도 정향을 조공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향이 실제로 재배된 지역은 극히 일부였으나 그 집산과 유통 거점은 동남아시아 일대에 널리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유라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향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중국 서진(西晉) 시기(266~316) 혜함(嵇含, 263~306)이 저술한 『남방초목장(南方草木狀)』, 동진(東晉) 시기(317~420)의 저술인 『구진중경(九眞中經)』, 『포박자(抱朴子)』,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수신후기(搜神後記)』 등에는 ‘계설향(鷄舌香)’이 등장한다. 북위(北魏) 시기(386~534) 가사협(賈思勰, ?~?)이 6세기경에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정향으로 향분(香粉)이나 화장용 기름을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 가운데 일부는 실제로 당시에 저술된 것인지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 있기에, 정확히 기록된 당시에 정향을 사용하였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752년 작성된 문서인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에는 정향을 가리키는 ‘정향(丁香)’과 ‘정자(丁字)’가 기록되어 있어 실제로 정향을 사용하였다는 용례를 확인할 수 있다. 정향의 수입과 유통에 관한 기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송대(960~1279)에 이르면 보다 본격적으로 정향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진경(陳敬, ?~?)이 저술한 향료 백과사전인 『진씨향보(陳氏香譜)』에는 정향과 다른 향료를 합성하여 다양한 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처럼 고대부터 정향은 동유라시아에서 활발히 유통되고 사용되어 온 물품이었다. 정향은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생산되었지만 동아시아에서도 오래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정향을 구입해 왔다. 16~17세기에는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면서 정향을 탈취하기 위하여 경쟁을 벌였다. 이후 시기 정향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후술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