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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네(quinine)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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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6-01-02 1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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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말라리아 치료제, 키니네(quinine) Ⅱ



HK + 사업단 HK연구교수 김현선



  중국의 경우 중국의 키니네 유입은 17세기 말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1693년 강희제(康熙帝)는 열병을 앓았는데, 이내 학질(瘧疾) 즉 말라리아 증세가 나타났다. 다양한 치료법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인 드 폰타네(Jean de Fontaney, 洪若翰, 1643-1710)가 키니네를 진헌하였다. 강희제는 키니네를 복용했으며, 이후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강희제는 선교사 드 폰타네에게 키니네를 사용하여 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궁중 사람들에게 전수하도록 하였다. 이후 조정에서 사용되었으며, 정치적 속성을 가지고 황제가 하사하는 물품이 되기도 하였다.


  다만, 중국에 도입된 초기 키니네는 특정 계층에게만 허용된 ‘특권 약물’이었기에, 일반 민중에게는 쉽게 보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열강의 기나나무 대량 재배 및 판매로 인해 중국의 키니네 수입과 수요 역시 급증하였다.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상하이 강해관(江海關)에서는 총 454,238 해관양(海關兩)의 키니네를 수입했는데, 이는 수입된 물품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1935년에서 1937년 사이에는 4,095,929 해관양이 들 정도로 상당히 많은 양의 키니네가 수입되었다.

 

  한국의 경우 1880년 무렵부터는 널리 쓰이고 있었다. <독립신문>에는 1896년 11월 7일부터 1899년 12월 4일 폐간 때까지 키니네 광고가 600회 이상 실렸다. 이는 전체 광고 건수 4693개의 15%나 될 정도로 키니네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사진] 키니네와 광고지

출처 :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


  키니네는 말라리아 퇴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국과 한국의 공중보건 개선에 기여했다. 특히 중국, 남부와 중부의 열대 지역에서 키니네는 필수적인 약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중국은 키니네를 수입에만 의존해야 했다. 주요 공급국인 네덜란드와 영국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기나나무 재배와 키니네 생산을 시도했다. 20세기 초 윈난성(雲南省)과 광둥성(廣東省)에서의 재배를 시도하였으며, 이는 중국이 자급자족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키니네는 단순한 약물을 넘어 중서 교류의 상징적 사례이자 제국주의적 확장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키니네는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제국주의적 통치와 경제적 이익을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했는데, 열대 지역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병력 손실을 줄이며,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 및 군사적 운영을 뒷받침했다. 


  중국은 초기에는 키니네의 수입에 의존했지만, 점차 기나나무 재배와 의약품 자급화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추구했다. 이러한 역사는 외래 자원의 현지화와 자립적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