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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라시아의 수유(酥油) 이야기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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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6-01-02 13: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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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라시아의 수유(酥油) 이야기 Ⅱ



HK + 사업단 HK연구교수 최소영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수유를 제조하는 수유적(酥油赤)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다.


수유적(酥油赤)을 폐지하였다. 황해도·평안도에 수유적이 있는데, 스스로 달단(韃靼)의 유종(遺種)이라 하면서 도재(屠宰)로써 직업을 삼고 있었다. 매 호(戶)에 해마다 수유(酥油) 한 정(丁)을 사옹방(司饔房)에 바치고는 집에 부역(賦役)이 없으니, 군역(軍役)을 피하는 사람이 많이 가서 의지하였다. 그러나 수유는 실로 얻기 어려우므로, 혹은 한 호(戶)에서 몇 해를 지나도 한 정(丁)을 바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몇 호에서 공동으로 한 정을 바치는 사람이 있게 되니, 국가에 들어오는 것은 얼마 안 되는데도 주현(州縣)의 폐해(弊害)가 되는 것은 실제로 많았다. 서흥군(瑞興郡)에 한 호(戶)에 건장한 남자가 21명이 있으면서 부역(賦役)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태상왕이 병조에 명하여 각도의 수유적(酥油赤)의 호수(戶數)를 두루 살펴서, 있는 곳의 고을에서 군역(軍役)에 충당(充當)하게 하니, 참의 윤회가 아뢰기를, "수유는 어용(御用)의 약(藥)에 소용되며, 또 때때로 늙어 병든 여러 신하들에게도 내리기도 하니, 이를 폐지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태상왕은 말하기를, "그대의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드디어 이를 다 폐지하니, 모두 수백 호(戶)나 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4권, 세종 3년)

  그러나 이후 세종 11년 명의 사신이 와서 수유를 요구하자 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수유 제작의 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생산 지역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경상도, 황해도, 강원도, 함길도가 망라되어 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은 명대(明代) 중앙티베트와 암도, 캄 지역의 티베트인들이 수유를 일관되게 바친 것으로 적고 있다. 다만 티베트 측 사서에는 관련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사장(烏思藏)은 불화, 동 불상, 동탑, 사리, 각색 족력마, 각색 철력마, 각색 보로, 산호, 서각, 좌계, 모영, 소유, 명회, 명갑, 도검을 바친다.(烏思藏 畫佛•銅佛•銅塔•舍利•各色足力麻•各色鐡力麻•各色氆氌•珊瑚,•犀角•左髻•毛纓•蘇油•明盔•明甲•刀劒)

호교왕(護教王)은 홍치 이후 내공했는데 그 예는 보교왕과 같다. … 공물은 불화, 동불, 동탑, 사리, 각색 족력마, 각색 철력마, 각색 보로, 산호, 서각, 좌계, 모영, 수유, 명회, 명갑, 도검이다.(護教王 弘治以後來貢 例與輔教王同 … 貢物 畫佛•銅佛•銅塔•舍利,•各色足力麻•各色鐵力麻•各色氆氌•珊瑚•犀角•左髻•毛纓•酥油•明盔•明甲•刀剱) 

조민(洮岷)등처 번승들은 동불, 불화, 사리, 말, 낙타, 수유, 청염, 청목향, 족력마, 철력마, 보로, 좌계, 모영, 명회, 명갑, 요도 총 16종을 바친다. 이것은 서융의 조공이다.(洮岷等處番僧族 貢銅佛•畫佛•舍利子•馬•駝•酥油•靑鹽•靑木香•足力麻•鐵力麻•氆氌•左髻•毛纓•明盔•明甲•腰刀 凡十六種 此西戎之貢也.)

사천 위주 보현 금천사 번승, 잡곡 안무사, 달만 장관사와 송번 무주등처 섬서조민등처 번승, 조민등처 번족은 말, 동불, 사리, 수유, 청염, 불화, 족력마, 철력마, 보로, 좌계, 청목향, 명회, 명갑, 요도를 바친다.(四川威州保縣金川寺 番僧 雜谷安撫司 達蠻長官司 及 松番茂州等處 陝西洮岷等處番僧 洮岷等處 番族 馬•銅佛•舎利子•酥油•青鹽•畫佛•足力麻•鐵力麻•氆氌•左髻•靑木香•明盔•明甲•腰刀) 

티베트인은 원~명대를 지나면서 확실히 정제 버터를 넣은 수유차를 상용한 것으로 보인다. 명 조학전(曹學佺)의 『촉중광기(蜀中廣記)』에는

서번인은 신체가 장대하고 용맹하며 산머리를 장악하고 거주하는데 성질이 극히 악하다. ... 먹는 것으로는 청보리를 갈아서 병(餅)을 만들고 수유를 끓인 차를 취식하여 끼니로 삼는다.
고 적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명 조정은 수유 수급을 위하여 하주 지역의 티베트인들에게 젖소를 사주어 키우게 하고 수유를 만들어 조정에 바치게 하였다. 이는 홍희 연간의 일에 대한 실록의 다음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통정사(通政司)의 주: 하주군민지휘사(河州軍民指揮司)가 말하기를: 영락 연간 관에서 젖소를 사서 수유를 만들어 진상하였는데 후에 조서를 받들어 [수유] 만드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구매한 소는 여전히 있으니 청컨대 경사로 보내게 하십시오. 하니 황제가 행재의 호부신에게 말하기를: 수유 올리는 것을 멈추게 한 것은 황고의 어진 은혜로 백성을 고되게 하지 않고자 함이었다. 하주는 땅이 멀고 주둔군이 많으며 땅이 춥고 사람은 가난하니 소를 모두 그들에게 주라고 하셨다(『선종장황제실록(宣宗章皇帝實錄)』 권10 홍희원년(洪熙元年) 10월 8일).
  고려 기록에서 본대로 수유는 제작에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되는 일이었고 그 때문에 명이 조정의 경비절감을 위해 수유를 파하고 그와 관련된 인력을 줄이기도 했다. 

  행재예부등 아문의 여러 낭비를 없앰. … 수유 4천근을 모두 혁파하고 두역 6천 4백여 명 중에 나이 들고 병든 자를 골라 모두 돌려보낸다(『영종예황제실록(英宗睿皇帝實錄)』 권2 선덕(宣德) 10년 2월 26일).
  청대에도 티베트인들은 조정에 수유를 보내고 있다. 티베트 승려들이 동불, 사리 등과 함께 수유를 바쳤다는 기록이 다수 보인다. 이는 청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옹정 연간 청군은 티베트에 주둔하는데 티베트 주둔 청군에 대해 실록의 한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판리서장사무호군통령 마라(馬喇, Tib. ma lA), 액외내각학사(額外內閣學士) 승격(僧格)의 주접: 반천 어르더니와 버일러 포라내(pho lha nas bsod nams stobs rgyas, 頗羅鼐, 1689-1747)가 사람을 보내 수유, 초면, 소, 양, 말린 곡식 등을 보내 왔습니다. 신 등은 누차 돌려보냈는데 그들은 강하게 돌려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은 것을 관병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성지를 받았다: 마라, 승격은 반천 어르더니, 포라내가 보낸 물품을 가치를 계산하여 넉넉히 은량으로 주도록 하라.(『세종헌황제실록(世宗憲皇帝實錄)』 권112 옹정(雍正) 9년 11월 1일)
  즉 티베트 조정에서 주둔 청군에게 소고기 양고기, 곡식과 함께 수유를 보내 군량으로 삼게 한 것이다. 옹정은 이에 대하여 “또한 그들에게 유를 전하기를 짐이 군대를 보내 티베트에 주둔하게 한 것은 특히 탕구트의 사람들을 위해 지방을 지키는 것이며 그들을 평안하게 하고자 함인데 어찌 추호라도 누를 끼칠 리가 있겠는가. 이제 그들이 보내온 물건들은 그들 속하의 백성에게서 탄파한 것이니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리 없다. 또한 나의 병사의 군량은 절대 모자라지 않으니 도울 필요 없다. 이번에 은량으로 주어 보내는 것은 절대 너희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탕구트인들에게 전하여 짐의 뜻을 모두 알게 하라.”라고 덧붙였다. 

  티베트의 까뢴(bka’ blon, Ch.噶布倫)에게 청이 수유를 급여 형식으로 주었던 기록도 있다. 즉 건륭 연간, 까뢴에게는 급여가 없이 짬빠(糌粑, 볶은 보릿가루)와 수유를 줄 뿐인데 그것도 정해진 액이 없다고 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다.  


[사진] 현대의 간편한 수유차 가루

  청대에는 수유가 조정에서 일반적인 물품으로 여겨진 듯하나 여전히 귀한 물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희제는 천하의 물건은 한도가 있으니 지금 수유가 넉넉하다고 해서 과하게 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티베트인들은 중국 지역에서 찻잎을 들여와 끓여 먹으면서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였고, 점차 여기에 정제 버터를 넣어 섞어서 음용하여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 열량을 높일 수 있었다. 수유차가 궁중 음식에 대한 서적인 『음선정요』에 실린 것을 보아 티베트 승려들을 통해 몽골제국 지배층에게도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고려에까지 수유를 요구한 것을 보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에서 양이나 소 등을 키워 수유를 제작한 것은 몽골인이었고 이들은 ‘수유간’ 혹은 ‘수유적’이라는 명칭으로 군역에서 면제되어 수유를 생산하여 조선 조정에 바쳤다. 한편 원을 계승한 명 조정에서는 티베트인들에게 공물로 수유를 요구하였고 더 나아가 명은 암도 지역민에게 관에서 소를 사 주고 그것을 키워 수유를 제작하여 조정으로 보내게 했다. 청대에는 황제가 수유를 아낄 것을 명령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황실과 조정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청군이 티베트에 주둔하게 되면서 그들도 수유에 익숙해졌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