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합유의 학술적 정의>
소합향은 소합국(蘇合國)에서 나오기 때문에 소합향이라 명명되었다. 소합국은 오스만 제국을 가리키는데, 소합향의 주 생산지가 튀르키예라는 것으로 보았을 때 당대에도 이슬람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파악했음을 알 수 있다.
소합향은 소합향나무이다. 튀르키예의 남서부에 위치한 몰라 주의 무글라(Mugla)라는 지역이 주요한 생산지이고, 기원식물은 소아시아 남부, 시리아북부, 이집트, 소말리아와 페르시아만의 주변국 등에 분포하며, 아프리카와 인도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중국의 광시(廣西)⋅윈난(雲南) 등에서도 재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유사종의 오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소합향나무는 낙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0~35m, 줄기 지름은 1m에 달한다. 서식지는 해발 0~400m, 연평균 강수량 1,000~1,200mm, 평균 기온 18℃의 환경을 선호하며, 늪지⋅강둑⋅해안 등 습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소합향 제조를 위한 수액 채취와 기름 제조는 5월에서 11월까지 이어지는 고된 작업으로 여러 단계를 거친다. 6월에서 9월 사이에는 나무 줄기의 약 4분의 1을 세로로 벗겨내어 두꺼운 수액을 얻는다. 줄기에 상처를 내면 수액이 흘러나오고, 두드려 자극하면 더 많이 흘러나온다. 벗겨낸 수액은 끓는 물에 넣어 부드럽게 한 뒤 압착한다. 이후 수액은 물에 희석되어 부드러움을 유지하고 향이 보존된다. 마지막으로 증기 증류를 통해 연한 노란색 기름이 얻어진다.
<소합유의 전래 : 중동에서 동북아시아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소합향을 향수로 사용했는데,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시대 즈음하여 약용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합향이 동아시아로 전래된 것은 한(漢)나라 대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 말에 편찬되었다고 알려진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 처음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후 양(梁) 도홍경(陶弘景, 456~536)이 편찬한 『본초경집주(本草經集註)』에서 “세상에 전하길 사자(獅子)의 분변이라고 하나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지금의 것들은 모두 서역으로부터 왔으며 진품을 구별해내기 어렵다. 복용약으로는 쓰지 않으며 오로지 좋은 향으로 사용된다”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로써 보았을 때, 당시까지는 한약재보다는 향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사자의 분변’이라고 전한다는 대목인데, 판매와 홍보를 위해 상상의 동물인 사자의 분변이라고 별칭을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분변이라는 것으로 보아 당대에 이미 환의 형태로 제작⋅유통되었다고 생각되며, 그렇기 때문에 진품을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대(唐代)에 편찬된 『신수본초(新修本草)』에는 위의 두 책을 인용한 뒤, ‘이 향은 서역을 거쳐 곤륜으로 들어 왔다. 자적색(紫赤色)인데 진단(眞檀)의 자색(紫色)과 비슷하다. 열매는 단단하고 향이 극진하다. 무게는 돌 같으며, 불을 붙였을 때 타고 남은 재가 회백색인 것이 좋다’고 하여, 소합향의 연원과 더불어 당시 유통되던 소합향의 특징을 덧붙였다.
송대(宋代)에 출간된 『본초도경(本草圖經)』에는 『신수본초』에서 언급한 것은 오늘날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광남(廣南)에 비록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소목(蘇木)과 같은 종류로 향기가 없다. 약물 중에서는 오로지 끈적한 기름[膏油]같은 것을 사용하는데, 이는 향기가 매우 강렬하다. 도홍경(『본초경집주』)이 언급한 사자의 분변이라는 것은 또한 이 끈적한 기름을 말하는 것이다. (중략) 『양서(梁書)』에서 말하길 인도[天竺]에서 나오는 소합향은 무릇 향즙을 끓인 것이고 자연에서 난 것이 아니다. 또한 이르기를, 로마[大秦國]에서 나오는 소합향은 먼저 그 즙을 끓인 후 향고(香膏)로 만드는데 장사치가 그 찌꺼기를 판 것이 중국에 전해지다 보니 향이 많이 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즉 광남에서 판다는 것이 제련하고 남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끈적한 기름[膏油]을 사용하니, 곧 그것들을 합하여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혹 이르기를, 사자의 분변이라 하는 것은 또한 서역의 초목 껍질의 즙으로 만드는 것이니 이는 오랑캐가 가격을 높게 받으려고 이름을 꾸민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후대로 오면서 인도⋅로마의 소합향 생산 정보와 더불어 중국으로 전해지는 소합향에 대한 정보가 더 상세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합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으로 보아 고체형태로 전해지던 소합향이 송대에는 소합유로도 생산⋅유통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기록은 현재 소합향의 생산 방법과 유통 상황과도 아주 흡사하다. 따라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합향은 송 후기에 정립되었고, 이러한 내용은 명(明) 초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명대에 출간된 『본초품휘정요(本草品彙精要)』에 따르면, “끓여 정련하여 만든다”, “자기 그릇에 보관하고 고(膏)의 형태로 사용하며 꿀 같은 점성을 지니며 향이 난다 (중략) 여과하여 찌꺼기를 버린 후 약에 넣는다”라고 하여, 소합향의 형태가 ‘끈적거리는 점성이 강한 액체’임을 확실하게 표현하였다. 명칭은 소합향이지만 실상은 소합유였던 것이다.
『본초강목』에서 비로소 여러 서적에서 ‘소합유’라는 항목으로서 기름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동시대의 『본초상절(本草詳節)』에서 향고(香膏)와 향즙(香汁) 두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보아 고체 형태 또한 계속 유통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의 유통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명말~청초 시기에는 소합향보다는 소합유 형태로의 유통이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반적인 기록에서 소합향을 소합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초징요(本草徵要)』에서는 “소합유는 새나 벌레를 잡을 때 쓰는 끈끈이와 같은데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끌어올리면 실이 매달리는 것처럼 끊어지지 않는 것이 진품이다”이라고 했으며, 이밖에 『본초회언(本草滙言)』⋅『본초이독(本草易讀)』⋅『본초비요(本草備要)』⋅『본경봉원(本經逢原)』⋅『본초종신(本草從新)』⋅『본초구진(本草求眞)』⋅『본초술구원(本草述鉤元)』 등에서 소합향과 소합유를 언급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소합유에 대한 서술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잇시키 나오타로(一色直太郎)는 『일본한약의 양부감별법 및 조제방(和漢薬の良否鑑別法及調製方)』에서 “회갈색이며 막대기로 찔러보면 찰기가 있고 광택이 없는 것이 좋다”라고 했는데, 소합향이 수분을 다량 함유하면 회색이 짙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일본에서 유통되던 약재의 품질이 낮았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소합향은 한대에 고체 상태로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송대에 들어 그 연원이 구체적으로 파악되었고, 명대에 액체 상태로 유통되기 시작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소합유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