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동아시아의 만능 접착제, 교(膠) Ⅰ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4-06-21 13: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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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아시아의 만능 접착제, 교(膠) Ⅰ
HK+ 사업단 HK연구교수 김병모
교(膠)는 동물의 가죽‧힘줄‧창자‧뼈 등을 물과 함께 끓여서 추출한 천연 단백질이며,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접착제를 지칭하는 용어의 하나에 해당했다. 교에 관한 이른 시기의 기록물 가운데 하나인 『주례』 고공기(考工記)에서도 “교(膠)는 붙이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으며, 후한시대 문헌인 『설문해자』‧『이아』 등에서도 동일 의미로 풀이했다. 주로 짐승의 가죽이나 물고기의 껍질 등을 이용했기 때문에 한글로는 ‘가죽의 풀’을 뜻하는 ‘갓블’‧ ‘갓플’‧‘갓풀’등으로 명명했다. 일본에서는 삶다[煮]에 해당하는 ‘に’와 가죽[皮]에 해당하는 ‘かわ’를 합성하여 ‘니가와’라는 명칭을, 서양에서는 ‘glues’‧‘glue’‧‘gelatin’ 등의 명칭을 사용했다. 대개 원 재료를 끓여 교질을 추출한 후 여과‧농축‧응고‧ 건조 등의 과정을 거쳐 제조했다.
[왼쪽부터] 『석보상절』(1447), 『훈몽자회』(1527), 『유합』(1543 이전), 『방약합편』(1885)
화학적으로 교는 콜라겐(Collagen, C102H149O38N31)에 해당하며, 여기에 글리신(Glycine), 프롤린(Proline), 하이드록시프롤린(Hydroxylysine) 등 다양한 아미노산을 함유했다. 이들 아미노산은 동물마다 그 구성비가 다르며, 따라서 각각 물성을 달리하는 요인으로 기능했다. 아울러 단백질이 주요 성분이기 때문에 식용 및 약용으로도 사용했다.
이와 같은 동물성 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제조‧사용되었으며, 주로 내륙아시아와 서아시아 등이 주요 기원지로 이해되고 있다. 사해 근처 나할 메마르 동굴 출토 유물과 고대 이집트 유적의 회화 및 공예품 등에 사용된 교의 경우 각각 기원전 6000년, 기원전 2500년경에 해당한다. 그리스지역의 경우도 우피교와 어교 제조에 관한 기록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동물사』에 언급되며, 로마 학자 플리니우스(23~79)의 『박물지』에도 어교의 제조 및 사용법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현존 자료에 근거할 경우 중국이 가장 이른 시기에 출현하며,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저작으로 간주되는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과 『주례』 등은 가장 오랜 교 관련 기록물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용된 구교가 가장 이른 제조 용례에 해당한다.
동물성 교는 지역별로 다양하게 출현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시대 우교‧어교의 출현과 더불어 이후 토교‧녹교‧철갑상어부레교‧고래꼬리교 등의 제조로 확대되었으며, 흑해 지역에서는 철갑상어교, 북극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는 연어‧송어 등의 알을 이용한 어란교, 연해주 지역에서는 해삼교 등을 생산했다.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 마교‧우교‧녹각교‧서교(犀膠)‧어교 등의 제조를 시작으로 이후 저교(猪膠)‧구교(狗膠)‧서교(鼠膠)‧타교(駝膠)‧여교(驢膠)‧나교(騾膠)‧미록교(糜鹿膠) 등 다양한 종류의 교를 생산했다.
[사진 2] 막대형 아교
중국의 경우 대개 동물 이름을 앞에 붙이는 명명법을 선호했는데 어교(魚膠)와 같이 물고기 전체를 강조하여 범칭으로 명명한 경우, 표교(鰾膠) 및 녹각교(鹿角膠) 등과 같이 사용 부위인 부레[鰾] 및 녹각을 강조하여 명명한 경우, 황명교(黃明膠)‧청교(淸膠)‧백교(白膠) 등과 같이 교의 색과 투명도 등에 초점을 두고 명명한 경우, 개교(蓋膠)와 같이 아교를 끓여서 추출할 때 위 부분의 맑은 것을 지칭하여 명명한 경우, 조교(條膠)와 같이 나뭇가지 모양의 긴 막대형 교를 지칭하여 명명한 경우, 수교(水膠)와 같이 물소로 제조된 교를 지칭하여 명명한 경우, 아교(阿膠)‧광교(廣膠) 등과 같이 산둥성 동아현(東阿縣)과 광둥 및 광시 지역에서 산출되는 교를 강조하여 명명한 경우 등 다양한 방식의 명칭 및 명명법을 출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