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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황금, 용연향(龍涎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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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3-03-02 16: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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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황금용연향(龍涎香)


HK + 사업단 HK연구교수 이완석 

 


   『아라비안 나이트』 중 선원이자 상인인 신드바드가 들려주는 7번의 항해 모험담은 기상천외한 사건들로 가득 차서 독자에게 크나큰 재미를 준다. 그 6번째 항해에서 난파되어 무인도에 표착하게 된 신드바드는 각종 보석들을 비롯한 보물들이 온 섬에 널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신드바드는 이 섬에서 용연향이 솟아나는 샘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결국 섬을 탈출한 신드바드는 이 보물들로 인해 큰 부를 획득한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용연향이란 과연 무엇이기에 옛사람들이 보석과 동급인 진귀한 물건으로 여기고 목숨을 건 항해를 통해 바다 건너로부터 획득할 만한 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용연향>

출처: 위키미디어


  용연향(ambergris)은 사향(musk), 영묘향(civet)과 함께 동물로부터 얻어지는 향료이다. 용연향은 은은하면서도 달콤한 향기가 나며, 다른 향료와 배합하면 향을 더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세계적으로 지극히 환영받는 향료였다. 또한 동물성 향료는 채취가 어려워 다른 향료에 비해 더욱 귀중하게 인식되며, 이들 중 가장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용연향이다. 근대 이전에 용연향을 획득하는 주된 방법은 해변에 표착한 돌 같이 생긴, 향이 나는 덩어리인 용연향을 그냥 채집하는 것이었다. 희귀하면서도 우수한 향료라는 점으로 인해 용연향은 굉장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오직 바다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는 용연향에 대해 옛사람들은 다양한 상상을 전개하였다. 용연(龍涎)이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인들은 머나먼 서쪽 바다에서 획득한 용의 침으로 생각하였다. 북송(北宋) 말, 남송(南宋) 초의 인물인 섭정규(葉廷珪)는 용연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용연은 대식국(大食國)에서 난다. 바다의 큰 돌 위에 용이 많이 서려서 자다가 침을 흘리고, 이 침이 수면을 떠돈다. 사람들이 기이한 새가 모여들고 물고기들이 다투어 깨무는 것을 보고 막대기로 건져낸다. 용연은 본래 향이 없으나 비린내에 가까운 기미가 있다. … 광택이 나고 여러 향이 나므로 (다른) 향과 조합하는 데 사용한다.

진경(陳敬), 『진씨향보(陳氏香譜)』

  계속된 남송 시기에도 용연향은 용이 생산하는 것으로 여겼다.


  여러 향 중에 용연이 가장 진귀하고, … 외국에서는 매매금지 물품으로 대식국에서 난다. 바다 가까운 지방에서 구름이 항상 산을 가리고 있는 곳이 있으면 (현지인은) 그 아래에 용이 자고 있음을 안다. 반년 혹은 2, 3년 동안 현지인이 번갈아 지켜보다가 구름이 흩어지면 용이 떠났음을 알고 가서 용연을 얻는다.

장세남(張世南), 『유환기문(游宦紀聞)』

  용연. 대식국 서해(西海)에는 용이 많은데, 돌을 베고 한 번 자며, 침이 수면을 떠돌다 쌓여서 단단해진다. 어부[鮫人]가 채취하여 지보(至寶)로 여긴다. 새것의 색은 하얗고 오래되면 검어지며, 태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부석(浮石)과 같아 가볍다.

​조여괄(趙汝适), 『제번지(諸蕃志)』

  중국인의 세계 지리에 대한 개념이 정밀해짐에 따라 용연향의 생산 지역을 자세하게 특정하게 되었다. 원대(元代) 왕대연(王大淵)은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이남 지역에 있는 층발라국(層拔羅國,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용연향이 생산된다고 기재하였다. 또한 왕대연은 직접 수마트라 섬 서북쪽에 있는 용연향이 생산되는 섬을 방문하고 이를 “용연서(龍涎嶼)”라고 기록하였다.


  하늘이 맑고 기운이 온화한 때를 맞아 바람이 물결을 솟구치게 만들면 여러 용들이 유희하며 바닷가에 출몰하는데, 때때로 그 섬 위에 침을 토하기에 (섬이 그러한) 이름을 얻었다. 침의 색은 오향(烏香, 아편)처럼 검기도 하며 혹은 부석과도 같고 미약한 비린내가 난다. 여러 향과 조합하는 데 사용하면 향기가 맑고 오래간다. … 이 땅은 이전에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다른 외국인이 통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고 와서 이를 주어다 다른 나라에 판다고 들었다.

​왕대연(王大淵), 『도이지략(島夷志略)』

  그러면 ‘용이 흘린 침’인 용연향을 중국인은 어떻게 이용하였을까? 남송 시대 주거비(周去非)는 용연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사람들이 용연에 특이한 향이 있다고 하거나 용연의 비린내가 여러 향들을 발산하게 해준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틀렸다. 용연은 향을 더해주거나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기를 모아줄 뿐이다. 향과 조합할 때 진짜 용연을 쓰면 1수(銖)를 살라도 푸른 연기가 공중에 떠서 뭉치고 흩어지지 않는다.

주거비(周去非), 『영외대답(嶺外代答)』

  중국인에게 있어 용연향은 보통의 향료와는 다른 신묘한 효능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용은 황제의 상징이었기에, 용연향은 황제와 궁중에서 사용되는 향으로서 향유되었다. 북송 선화(宣和) 7년(1125년) 12월 11일에 휘종(徽宗) 황제가 신하들과 함께한 주연을 묘사한 시에서 “방정에서 사르는 용연[方鼎炷龍涎]”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용연향이 황실 전용의 향료라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의 높은 수요로 인해 인도양 연안의 여러 국가는 중국과 용연향을 무역하였다. 1974년 중국 취안저우[泉州] 바다에서 1277년경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송대 선박이 발견되었다. 중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침몰한 것으로 보이며, 4,700근에 달하는 향료와 약재를 적재하고 있었는데 그중 순도 높은 용연향 역시 발견되었다.

  

<남송 시대 침몰선에서 발견된 용연향>

출처: 위키미디어


  명(明)나라 때에도 여전히 용연향은 황실에서 애용되었다. 가정제(嘉靖帝)는 용연향이 수명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믿고, 여러 차례 용연향의 구매와 진공을 요구하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용연향이 구해지지 않자 관인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여겨 그들을 삭직하고 유배 보냈는데, 호부상서 고요(高燿)가 사사로이 구매하여 진공하자 그 값을 두 배로 쳐주고 태자소보(太子少保) 관직을 더하여주었던 일도 있었다. 이처럼 용연향은 황제도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였기에 그 값은 굉장히 비쌌다. 이미 송대에 용연향 1냥(兩)이 황금 1냥과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차츰 인간의 이지(理智)에 의해 신비 속에 감춰진 용연향의 정체가 폭로되었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인도양 스코트라 섬(소말리아 대안의 소코트라 섬)의 거주민이 포경을 통해 고래에게서 용연향을 채취하여 무역한다고 기록하였다. 명대(明代) 정화(鄭和)의 통역이었던 비신(費信)은 용연향의 채집과 매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용연은 처음에는 유지(油脂)나 아교 같으며 흑황색(黑黃色)이고 물고기 비린내가 다소 난다. 오래되면 진흙과 같다. 혹은 큰 물고기의 배를 가르면 나오기도 하는데, 말[斗]만한 크기의 둥근 구슬과 같으며 역시 물고기 비린내가 느껴지고 불사르면 맑은 향을 낸다. 수마트라의 시장에서 거래되는데, 그 값이 또한 가볍지 않아 관(官)의 저울로 1냥이면 그 나라 금전(金錢) 12개이니, 1근이면 금전 192개이다. 중국 동전 40,090문(文)으로 더욱 비싸다.

​비신(費信), 『성사승람(星槎勝覽)』

<향유고래>

출처: 위키미디어


  이제 용연향은 신령한 생물인 용이 아니라 현실 속 동물인 고래가 생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향유고래는 심해의 대왕오징어를 포식하는데, 대왕오징어의 단단한 주둥이는 소화하지 못한다. 고래의 장기에서 나온 유지·분비물이 이런 물질을 감싸 굳어져 반고체 상태인 결석이 생성되며, 이 결석이 분변에 섞여 배설되거나 혹은 토해낸 것이 바다를 표류하다가 인간에게 발견된 것이 바로 용연향이다. 소화기 내에서 결석은 장내 미생물들과 각종 효소에 의한 복잡한 작용을 거치며 고유의 독특한 향을 형성한다. 향유고래 100마리 중 1마리 정도가 체내에 이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희귀한 물질이라고 한다. 향유고래가 모든 바다에서 서식하고 있기에 용연향 역시 세계의 모든 해안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 주산지로 인도양(동 벵골만 제도, 서 아라비아해와 동아프리카의 제도)을 들 수 있다. 인도양의 유산양국(溜山洋國, 몰디브)‧방갈랄국(榜葛剌國, 벵골), 호르무즈 해협, 동북 아프리카 해안의 죽보국(竹步國, 소말리아 주바)‧목골도속국(木骨都束國, 소말리아 모가디슈)‧복랄왜국(卜剌哇國, 소말리아 브라바) 등이 진공(進貢)을 명분으로 명과 용연향을 무역하였다. 1615년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리처드 위캄은 류큐[琉球, 일본 오키나와]에서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인 매우 흰 용연향을 생산하고 있다는 서한을 남겼다. 이 용연향은 유익한 자원으로서 류큐 왕부에 모여진 후 다시 사쓰마[薩摩, 일본 가고시마] 번으로 보내졌고, 히라도[平戶]와 나가사키[長崎]에서 유럽 혹은 청(淸)나라에 수출되었다.

<네덜란드 에코마레(Ecomare) 수족관에서 소장 중인 용연향>

출처: 위키미디어


  용연향의 비밀이 밝혀진 후 인간은 용연향을 비롯하여 고기와 기름, 수염을 얻기 위해 고래를 대량으로 사냥하였다. 18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 매년 50,000마리의 고래가 포획되어 고래의 멸종 위기가 도래하게 되자, 1980년대에 들어 대부분 국가에서 상업적 포경을 중단하였고 미국․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용연향 자체의 매매와 소유를 법으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커진 희소성으로 인해 현대에도 여전히 용연향은 굉장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2017년에 발견된 60kg 용연향이 28억 4천만 원에 낙찰되었고 2020년 태국에서 발견된 100kg짜리는 35억 원에 팔렸으니 가히 바다 위를 ‘떠다니는 황금’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