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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沈香), 고귀하고 엄숙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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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3-01-06 16: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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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沈香), 고귀하고 엄숙한 향기


HK+ 사업단 HK교수 이승호



향(香) 중에 으뜸, 침향


  침향(沈香)은 침향나무(Aquilaria)의 수지(樹脂)가 침착된 수간목(樹幹木)으로서 중국 광시[廣西]·광둥[廣東]·하이난섬[海南島] 및 말레이시아·베트남 등지에서 생산되며, 예로부터 동아시아 지역에서 고급 약재와 향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본래 침향나무 목재는 연하고 물에 뜨며 향기도 없지만 수지 침착이 진행되어 ‘침향’이 되면 그 색이 어두워지고 재질도 단단하고 무거워지는데, 물에 완전히 가라앉을 정도로 수지 침착이 진행되어야 ‘침향’으로서 상품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침수향(沈水香)이라고도 불린다. 그밖에 같은 침향나무로부터 얻은 향목(香木)이라도 수지가 충분히 침착되지 않아 물에 가라앉지 않는 경우에는 침향과 구분하여 황숙향(黃熟香), 잔향(棧香) 등으로 달리 부르는데, 모두 침향보다 상품성이 떨어진다.


[사진 1] 석가탑 사리장엄구에서 발견된 침향

(국보 제126-26호, 불국사 박물관 소장)

  동아시아 지역에서 침향은 예로부터 고급 향약재(香藥材)로 널리 사용되었다. 향약(香藥)은 ‘향료약물(香料藥物)’을 간략하게 줄인 말로서, 천연 향료이면서 약재로도 사용된 것을 지칭한다. 여러 향약 중에서도 특히 침향은 가장 고가의 사치품으로서 오랜 시간 애호되었다. 동진(東晉) 시대 불교 경전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는 “여러 근향(根香) 중에 오로지 침향이 제일이다.”라고 하였고, 송대(宋代) 정위(丁謂)가 쓴 「천향전(天香傳)」에서는 “… 이렇듯 향을 피우면 모든 하늘로 통한다. 대개 침수향(沈水香)이 근본이요, 훈육향(薰陸香)이 그 다음간다.”고 하여, 예로부터 침향이 중요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침향은 고대로부터 불교 의례 등 신성한 의식을 치를 때 분향(焚香)하여 경건함을 더하였고, 약재로 쓰일 때에는 보통 곱게 갈아서 물과 꿀 등과 섞어 환으로 만들어 복용하였는데, 소화 기능[胃氣]을 도우며 소화불량·식욕부진 등의 증상을 개선하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믿어졌다. 또 침향은 옷에 붙은 벌레를 쫓고 향기를 스미게 하는 훈의향(薰衣香)으로도 널리 쓰였으며, 다른 약재와 섞어 화장품이나 세안제로도 이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향다(香茶)·침향수(沈香水) 등 음료로 식용되기도 하였으며, 침향목을 조각하여 불상이나 장식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침향, 응집된 수지의 향기


  침향은 성기고 유연한 조직의 특정한 나무 심재(心材)에 상처가 생기면 그 부위에 수지가 응집되고 오랜 시간 숙성과정을 거쳐서 생성되는 것으로, 시각적으로는 크고 작은 나무 덩어리처럼 보인다. 침향나무의 수액 통로는 수령이 30년 이상 되어야 비로소 발육이 완전해지고, 좋은 품질의 침향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10~20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3세기 무렵 오(吳)에서 찬술된 『남주이물지(南州異物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침향은 일남(日南,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침향을] 취하고자 하면 먼저 땅에 서 있는 나무를 베어서 쓰러뜨려 오래 쌓아두면 외피는 썩어 부스러지고, 그 심지는 지극히 단단하여 물에 넣으면 곧 가라앉으므로 이름 하여 침향이라 한다. 그 다음은 심지의 하얀 부분 사이에 있는데 굳고 정밀한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물에] 두면 가라앉지 않고 뜨지도 않아서 수면과 더불어 평평한 것을 이름 하여 잔향(棧香)이라 한다. [값어치가] 가장 적은 것은 거칠고 흰 것으로 이름 하여 계향(繫香)이다.”

  이처럼 향목이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이라 이름 하였으며, 이에 따라 고대 중국에서는 침수향 또는 수침향(水沈香)이라고도 불렀다. 그밖에 같은 침향나무로부터 얻은 향목으로 침향보다 수지 밀도가 떨어지는 것을 잔향(棧香)·황숙향(黃熟香) 등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들도 모두 ‘침향 계통’의 향목이다.

*이경희·최덕경, 「宋代 沈香 계통의 분류체계와 용도」, 『중국사연구』 100, 2016, 180쪽

 

  이러한 침향목의 구분은 송대(宋代)에 이르러 더욱 세분화되었는데, 송대에 찬술된 『제번지(諸蕃志)』 권하(卷下) 「잡물(志物)」에서는 “생향(生香)은 … 베어 넘어뜨린 향나무[香株]가 아직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나무 속에 향이 이미 생겨난 것을 일러 생향이라 한다. [수지가] 표면에 맺힌 것[結皮]이 3分인 것은 잠향(暫香), 5分인 것은 속향(速香), 7分인 것을 전향(箋香), 10分인 것은 침향(沈香)이다.”라고 전한다. 역시 수지의 밀도에 따라 구분이 이루어졌으며, 그중에서도 수지 밀도가 높은 침향을 으뜸으로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침향이 안내하는 동유라시아 역사

  침향은 그 가치가 금에 비견될 정도로 귀하였는데, 송대(宋代, 1178)에 찬술된 『영외대답(嶺外代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백성[省民]이 소 한 마리로 여동(黎峒, 중국 하이난 중남부)에서 향 1짐과 바꾸고 돌아와서 [상품의] 등급을 가려 보면, 물에 가라앉는 것은 열에 한두 개도 안 된다. 이때 향 가격은 백금과 같다. 이 때문에 객상(客商)들도 [향을 구매해서] 팔지 못하고 관리들[宧遊者]조차도 많이 살 수 없었다.”

  이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소량의 침향도 매우 고가의 사치품으로 취급되었는데, 침향이 가지는 이와 같은 물품의 특성은 고가의 교역품으로 활용되기에 매우 유리하였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해양 교역에서 침향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일례로 통일신라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침향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향약을 다시 일본으로 수출하였는데, 그 자세한 내역이 오늘날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라는 고문서 자료로 전해진다.


[도판 1]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 문서 일부
*물품 구입 목록에 ‘침향 5근’이 보인다.

 

  「매신라물해」에서 확인되는 침향 구입 사례는 총 4건으로 그중 3건의 경우는 침향과 함께 향로(香爐)를 구입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일본에서는 침향을 분향하는 데에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일본 귀족 사회에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남해산 향의 분향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신체나 의복에 향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 침향을 비롯하여 보통 6~7종의 향을 조합하여 피웠다고 한다. 이후 일본의 향 문화는 해상 실크로드가 번성하였던 헤이안 시대[794-1185]에 접어들면서 크게 꽃피우게 된다. 한편, 신라에서는 흥덕왕(興德王) 치세인 843년에 ‘사치 금령’을 통해 진골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수레와 침상에 침향을 사용하지 못하게 규정하였다. 당시 신라에서도 침향 계통의 향목이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기록에 나타나는 침향의 주요 생산지를 살펴보면, 중국의 광시[廣西]·광둥[廣東]·하이난섬[海南島] 및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이 지목되는데, 대체로 동아시아에서 침향의 수급은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에 크게 의지하였다. 『제번지』에는 침향의 생산지와 품질에 대해 “침향이 생산되는 곳은 한 곳이 아니다. 진랍(眞臘, 캄보디아)[의 것]이 좋고, 점성(占城, 베트남 중·남부)[의 것]이 그 다음이며, 삼불제(三佛齊,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있던 스리비자야 왕국)와 도파(闍婆, 인도네시아 자바) 등[의 것]은 하품(下品)이다.”라고 하여 캄보디아로부터 생산된 침향을 가장 높게 쳤음을 전한다.


  향약의 주요 소비지였던 전근대 중국에서 향료의 사용은 당대(唐代)까지도 황실과 귀족계층에 한정되어 향유되던 문화였다. 특히 중국의 침향 수급은 많은 부분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에 의지하여 충당되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중국에서는 침향이 고가의 사치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상교역이 성행한 송대(宋代)에 접어들면서 동남아시아 등지로부터 향료가 대량 유입되었고 도시의 향 가게에서도 다양한 향료가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서민 계층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서민층도 일상생활에서 향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시중에서 침향 계통의 향목을 사고파는 일도 더욱 많아졌다.

[도판 2] 남송 「경직도(耕織圖)」 부분(국립중앙박물관 『마음을 담은 그릇, 신안 香爐』 2008, p.82)
*직조를 하는 여인들 앞에는 향로가 놓여 있어 서민층도 일상생활에서 분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도판 3] 북송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부분(傅京亮 『中國香文化』 齊魯書社 2008, p.84)
*침향을 거래하는 향료 가게 간판에 “劉家上色沈檀揀香”라는 글귀가 보인다.

 

  명·청 시대에도 중국의 향 문화는 계속되었으나, 다양한 향료가 민간에 유통되며 향 문화가 크게 유행하였던 송대의 수준에 비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명 초에는 해금(海禁)과 함께 민간에서의 향 사용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명 중기 이후로 경제 발전과 함께 해금이 느슨해지며 향약의 사용은 다시 늘어나게 되었지만, 일상적으로 분향을 즐기는 문화는 쇠퇴하고 훈의(薰衣) 등 향료의 기능적인 측면이 보다 주목되었다.


  한편, 한반도에서도 고려시대에 접어들면 여러 향약이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었다. 고려 왕실은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왕비·왕태자 책봉 의식 등 각종 의례에서 향을 피웠고, 제사 및 불교도량, 시주 및 공로자에 대한 하사품으로도 귀한 향약이 활용되었다. 민간에서도 남녀 모두 향을 몸에 지니거나 옷에 향을 쐬 몸에서 향내 나는 것을 즐겼으며, 귀족들의 집에는 늘 향이 피워져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가의 향약으로서 침향도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아래의 자료는 고려 왕실과 사찰 및 민간에서 침향이 널리 애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기유(己酉). 왕이 침향목(沈香木)으로 공장(工匠)에게 명하여 관음상(觀音像)을 조각하게 한 다음 내전(內殿)에 두고, 아울러 반승(飯僧)하였다.


- 『고려사』 17, 세가 17, 의종 5년 4월 기유.

선장(仙仗)의 붉은 구름은 법림(法林)을 둘렀고(仙仗紅雲擁法林)
옥향로[玉爐]의 향불[香穗]은 전단·침향[檀沈]의 향이로다(玉爐香穗襲檀沈)


- 『동문선(東文選)』 14, 김양경 「宣慶殿道場音讚詩應製

구름에 닿을 듯한 큰 저택 색채도 현란한데(連雲甲第金碧眩)
은산 드리워진 발 절반쯤 걷혔으며(銀蒜垂垂簾半卷)
침향 연기에 노래하는 목청 메이고(沈香烟底咽笙歌)
미인의 미소는 남은 추파 보내는 것(美人微笑流餘眄)


- 『동국이상국전집』 12, 「이튿날 學錄 徐陵에게 長篇을 주다 竝序」

  다만, 고려시대에 사용된 향약 중 국내 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사향(麝香)·안식향(安息香)·자단향(紫檀香)·백단향(白檀香) 정도였고, 이마저도 사회적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침향을 비롯한 여러 고가의 향약 물품이 송이나 대식국(大食國)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수입되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 기록에 따르면 회경전(會慶殿)과 건덕전(乾德殿)에서 공회(公會)가 열리면 용뇌향(龍腦香)·자단향(紫檀香)·침향 등을 피웠다고 하는데, 이처럼 조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였던 용뇌향과 침향은 사실 고려에서 나지 않는 수입품이었다.


  조선시대 향 문화는 고려 시대의 전통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난다. 훈의를 이용한 향장(香粧) 대신 향낭 등의 패식향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국내에서 생산·조달이 가능하였던 모향·백단향·영릉향 등의 향약이 직물을 보존하는 의향으로 사용되었다. 또 독서를 할 때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향을 피우는 일이 많았으며, 여러 향약이 약재로 적극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그 효능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다만, 고려시대처럼 활발한 교역을 통해 해외로부터 고가의 향약을 다량 수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며, 그런 만큼 침향을 비롯한 고급 향약은 왕실을 비롯한 일부 지배층에서만 소비될 수 있었다.


침향의 역사적 의의

 

  침향은 그 생산지가 중국 남해안 및 동남아시아 일대였던 것에 반해, 주요 소비 지역이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걸쳐 있었다는 점에서 전근대 동아시아 해양 교역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비중이 매우 크다. 또 침향은 오직 수지가 충분히 침착된 침향나무에서만 채취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상품으로서의 희소성은 동아시아 귀족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침향이 지배층의 사치품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곧 침향은 전근대 동아시아 해양 교역을 상징하는 교역품이자 귀족 문화를 대표하는 사치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