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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이 안내하는 동유라시아 역사

  • 작성자HK+관리자

    작성일2022-09-07 19: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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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목이 안내하는 동유라시아 역사


HK+ 사업단 HK연구교수 남민구

 

 

[사진 1] 소목의 꼬투리 부분
출처: 위키백과


 역사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기록은 모든 역사를 담을 수 없다. 때로는 물품이 기록을 대신하여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주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품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기원하였는지 그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 소목(蘇木, sappan wood)은 이 우리에게서 멀어졌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근대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소목은 이제 일상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하는 한약재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소목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물품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면 소목이란 과연 어떤 물품이었는가? 소목은 어디에서 생산되었는가? 누구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어떻게 사용되었던 것인가? 소목을 둘러싼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해 보면 우리는 그동안 숨겨져 왔던 교역의 역사, 특히 바다를 통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 동서를 잇는 전지구적인 교류의 흔적을 발굴할 수 있다.


 

[사진 2] 소목의 물관부(심부분)

출처: 위키백과



소목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였던 소목이지만, 흥미롭게도 소목은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우리가 살고있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소목은 열대 기후에서 자라나는 식물로 인도 남부와 동남아시아가 주 원산지이며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 접경지역까지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다. 명대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 『본초강목(本草綱目)』에 의하면, 소목은 소방국(蘇方國)이라는 섬나라에서 생산되었기에 ‘소방목(蘇方木)’이라고 불렀으며, 이를 줄여 ‘소목(蘇木)’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소방국의 위치에 대하여 밝혀줄 수 있는 문헌은 없지만 동남아시아 일대로 추정되고 있다.

  소목의 생김새를 살펴보면, 줄기에는 가시가 돋아나며 다 자라면 5~9m 정도에 이른다. 꽃은 5~6월이면 노란색으로 피어나고 9~10월이면 열매가 맺기도 한다. 그러나 소목은 줄기와 뿌리 부분이 주요 사용된다. 소목의 줄기를 횡단면으로 자르면, 심 부분이 적황색에 가까운 빛을 띠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을 붉은색 염료로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뿌리는 노란색 염료로도 가공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붉은색 염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소목을 수입해 왔다. 이렇게 수입된 소목은 관료들이 입는 조복(朝服)이나 평상복을 물들이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소목의 심은 약재로도 즐겨 사용하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이나 『본초강목)』에 의하면, 소목의 심은 혈액 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주며 진통과 소염의 기능도 있다고 전한다. 실제로 소목은 항응고 작용과 항생·항균 작용이 있다고 밝혀졌다. 한의학에서는 파상풍이나 옹종, 창상과 같은 병균 감염으로 인한 상처의 치료제로 소목을 사용해 왔다.

우리 역사 속 소목


  이렇게 다양한 용례로 사용되어 왔던 소목이었던 만큼,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목을 사용해 왔다. 한반도의 경우,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소목을 관장하는 소방전(蘇芳典)과 적색 염료를 관장하는 홍전(紅典)이라는 기구를 둘 정도였다. 고려 시기에는 정종(靖宗) 7년(1041) 11월에 대소목(大蘇木)을 수입했다고 하며, 창왕(昌王) 원년(1389) ‘유구국(琉球國)’, 즉 류큐 사신으로부터 소목 600근을 받았다고도 전한다.

  조선 시대에는 섬라(暹羅, 시암Siam, 오늘날의 태국)와 일본 등으로부터 소목을 헌상받았다는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이중에서도 일본은 조선에 소목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15세기 중엽까지 조선은 일본과의 소목 거래가 빈번하였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물품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바로 소목이었다. 1460년대 이후로는 쓰시마[對馬] 사신이 주를 이룬 일본 사신들이 삼포(三浦, 제포, 염포, 부산포)로 와서 소목을 거래하였다. 조선은 면포와 면주를 주로 거래하였고, 일본은 구리, 소목, 후추를 교역하였다. 류큐도 조선에 적잖은 소목을 공급하였다. 14세기 이후 류큐는 동남아시아에서 소목을 구입하여 중국에 조공품으로 제공하면서 조선에도 소목을 제공하였다.


  조선의 소목 수입량은 늘어났지만 수요도 꾸준히 늘면서 소목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였다. 소목은 궁중 의복이나 관료 조복을 염색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상류층 사이에서 의복을 붉게 물들이는 홍염(紅染)의 풍조가 유행하였기에, 소목의 수요는 그치지 않았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왜구(倭寇)의 활동이 번성하고 임진왜란으로 일본과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이 단절되면서 소목의 공급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소목을 사용하던 상류층은 중국산 백사(白絲)나 사라능단(紗羅綾緞)으로 눈을 돌렸다. 또한 ‘잡염(雜染)’이라고 비하하였던 홍화(紅花) 염색에 주목하였다. 16세기 이후로는 조선에서의 소목 수요는 차츰 감소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17~18세기에도 조선은 쓰시마를 통하여 계속 소목을 조달하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간의 교역을 주로 담당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소목을 운송하였고, 쓰시마인들은 이들과의 간접 무역을 통하여 소목을 구입하였다. 쓰시마인들은 소목을 조선에 판매하였고, 조선은 다시 이를 국내에서 활용하거난 중국에 조공품으로서 전하기도 하였다.

동유라시아 역사 속 소목


  중국 역시 소목을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서진(西晉) 시대 학자 혜함(嵇含, 263~306)은 소목이 구진(九眞)에서 생산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베트남 중부에 해당한다. 『본초강목』에도 소목이 동남아 일대인 남해(南海)와 곤륜(崑崙), 혹은 베트남 북부와 중부인 교주(交州)와 애주(愛州)에서 생산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육전(唐六典)』에는 중국 남부 지역인 양주(楊州)와 광주(廣州) 등지에서 소목이 생산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교통로가 덜 발달하였던 고대에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해당하는 중국 남부나 베트남으로부터 소목을 수입해 왔던 것이다.


  송(宋)대와 원(元)대에는 민간 상선들이 해외로 교역을 활발히 진행하였고, 또한 몽골인들에 의해 육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중국 상인들의 활동 범위도 더욱 넓어졌다. 이에 따라 소목의 수입처도 더욱 확대되었다. 『제번지(諸蕃志)』에는 남무리국(藍無里國)과 진랍국(眞臘國)에서 소목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각각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 라무리(Lamuri)와 캄보디아에 해당한다. 해외 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소목의 양이 늘어나면서 민간에서도 사용할 정도가 되었다.


  명(明)대에는 해금(海禁)이 실시되어 민간 해외 무역이 급격히 쇠퇴하였지만 소목의 조달은 계속되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명으로 파견한 조공 사절단이 소목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연안에서의 밀무역도 소목이 공급되는 한 창구였다. 영락(永樂) 연간(1403~1424) 정화(鄭和, 1371~1434) 함대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소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산 물품이 대량 수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15세기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소목이 농장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면서, 중국으로의 소목 공급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일본(日本), 류큐[琉球], 진랍(眞臘), 시암[暹羅], 참파[占城], 자바[爪哇], 수마트라[蘇門答剌], 람풍[覽邦](수마트라섬 남단) 등의 국가들은 조공 사절단을 통해 소목을 중국에 전달하였다. 일본과 류큐는 동남아시아에서 구입한 소목을 명에 조공품으로 제공하였다.

  16세기에 이르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상선을 통해 소목을 조달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불랑기(佛郞機)’ 즉 포르투갈인들이 후추, 상아 등과 함께 소목을 운반해 와서 민간인들과 교역하고 있다고 전한다. 1570년경 포르투갈 문헌에는 소목을 ‘sapão’라고 표기하였고, 1598년경 네덜란드 문헌에도 ‘sapanhout’라고 표기하였는데, 이를 통해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여 소목 무역에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면 유럽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소목을 재배하고 상품화하여 중국과 일본에 판매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은 소목을 중국에 제공하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였다. 스페인인들도 필리핀(Philippines)에서 소목 생산을 강화하였다.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들이 필리핀에서 소목을 구입하였다. 특히 네덜란드동인도회사(VOC)는 18세기 소목 교역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은 인도네시아 숨바와(Sumbawa) 섬 비마(Bima), 시암, 바타비아(Batavia) 등에서 소목을 구입하였다. 이렇게 구입한 소목을 중국 등에 되팔았다. 중국은 이러한 다양한 소목 구입 경로가 계속 존재하였기에, 18세기 전반까지 중국은 전세계 소목의 가장 큰 소목 소비자였다.

  일본에서도 고대부터 소목을 사용하였다. 8세기경 신라로부터 구입한 물품 목록인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에도 소목이 확인된다. 근세에는 일본 상인이나 외국 상인을 통하여 소목을 수입했다. 16세기 말, 포르투갈인과 스페인인들과의 무역 즉 ‘남만무역(南蠻貿易)’을 통하여 대량의 소목을 구입하였다. 1604년부터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주인장(朱印狀)을 발급하여 해외 무역을 허용하였다. 주인장을 발급받은 ‘주인선(朱印船)’은 베트남 북부, 캄보디아, 시암, 필리핀 루손(Luzón), 대만(臺灣) 등지에서 소목을 구입하였다. 17세기 중반에는 중국과 네덜란드인들로부터 소목을 구입하였다. 소목을 운반하는 중국 상선은 ‘오선(奧船)’이라 지칭하였다. 오선은 양자강(揚子江) 하구에서 출항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소목을 구입하거나 양자강 하구에서 구입하여 일본으로 운송하였다. 중국 상선이 가져온 소목 양은 상당하였다. 1670~80년대에 1백만 근 이상이 중국 상선으로부터 조달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이 가져온 소목 양도 상당하여 수십만 근에 이르렀다.

  17세기 중반 이후 청(淸)이 천계령(遷界令)을 통하여 해안에 소개령을 내리면서 중국 상선의 해외 무역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인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일본에 소목을 공급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상선들의 운송량에는 한계가 있어 일본에서의 소목 가격은 높게 유지되었다. 일본에서는 소목을 대체할 염료로 홍화(紅花)에 주목하였다. 18세기에는 홍화 재배가 일본 각지로 확산되면서 소목을 대체해 나갔다.


  동아시아에서 소목은 고대로부터 활발히 활용되어 온 물품이었다. 소목이라는 물품이 운송되고 거래되는 정황을 통하여, 동아시아 해양 교역과 국제 관계의 양상, 나아가 전지구적 해외 무역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