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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경독기
저자서유구 저, 전재교 외 역
출판자연경실
작성자HK+관리자
작성일2021-09-01 16:48:31
조회수1244
책소개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는 풍석(楓石) 서유구 (徐有?, 1764∼1845)의 저술로, 서유구 만년의 학문적 성과를 보여주는 책으로, 다양한 학술적 주제와 이용후생학 관련 지식·정보를 담고 있는 만년의 노작(勞作) 중 하나이다. 《금화경독기》는 본래 8권이 완질이며, 권8이 낙질된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권7만 남아있으며 ‘동경도립일비곡도서관’ 소장본으로 ‘곡촌문고’의 소실(小室)에 포함되어 있다.
서유구는 40대 중반에 금화산(金華山, 지금의 포천시 영중면)으로 이주한 이후 《금화경독기》의 저술을 시작하여 68세 이후에 탈고하였는데, 이 책은 오랜 기간 독서하며 남긴 일종의 독서후기(讀書後記)나 독서차기(讀書?記)와 같은 성격의 저술이다. 독서 과정에서 특정 사안에 오류나 보완할 부분이 있을 때, 그 사안을 두고 차록(箚錄)하거나 차기(箚記)의 형식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일부 내용은 독서차기나 독서후기의 성격을 뛰어넘어 학술의 장을 마련하여 비판하거나 비평을 가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금화경독기》는 조선 후기 유서(類書)나 필기(筆記)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한 독서체험을 토대로 다양한 새로운 지식·정보를 포착하여 배치한 점에서 19세기를 대표하는 학술 필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금화경독기》는 그 제재와 내용이 자못 광범해서 문헌·문학·역사·경제·문화·자연현상은 물론, 광물과 채광의 개발을 비롯하여 새로운 식물 종자의 재배와 같은 이용후생학에까지 이른다. 서유구는 이용후생의 구상을 실제 지방 행정에서 실천한 바도 있는데, 그 행정 경험을 《금화경독기》에도 적지 않게 이월시키고 있어, 일견 단순한 독서후기를 넘어 실무 지침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곳에서는 해상무역을 통한 물류의 이동과 그 이점을 기록하는 등 열린 인식과 시대적 전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점에서 《금화경독기》는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寶庫)이자 19세기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한 최종 버전의 저술이라 평가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소개
- 저자 : 서유구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
- 역자 : 진재교
출판일
2019년11월 1일
자료소장형태
단행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