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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노대환, 대한제국기 유림의 尊聖運動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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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1-12-01 17: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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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유림의 尊聖運動과 그 의미 


◎ 저자명: 노대환(일반연구원) 

◎ 학술지: 한국문화연구 제40권

◎ 발행처: 한국문화연구원

◎ 간행일: 2021.06.30


본고는 대한제국기에 일부 유림이 중심이 되어 전개했던 尊聖運動을 고찰한 연구이다. 존성운동은 호서의병에 참여했던 유림이 주도한 유학 진흥운동이다. 이들 유림은 국모 시해와 같은 패륜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문명개화론이 확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학이 부진하기 때문이라고 보아 성균관 제도의 복구 등을 통해 유학을 재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1899년 고종이 우리의 종교인 유교를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조령을 내리자 유림은 이에 고무되어 존성을 위한 출판 작업에 나서 1900년에 『尊華錄』, 1903년에 『大東正路』를 간행하게 되었다.

존성운동은 을사늑약으로 사실상 국권이 피탈되기 전에 시도된 유학 진흥을 위한 유림의 적극적인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1년 대대적으로 척사운동을 전개한 이후 유림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는데 고종이 황제 지위에 오르자 고종에게 큰 기대를 걸고 존성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고종은 유학을 진흥하기 위한 별다른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존화록』과 『대동정로』가 각각 호서유림과 영남유림이 주도로 편찬되는 등 유림도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존화록』과 『대동정로』의 내용은 전통 유학을 고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존성운동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에 실망을 느껴 사상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유림이 속출하였다. 존성운동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도 여러 인사들이 계몽주의자로 전신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