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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조선시대 용뇌(龍腦)의 의료적 활용과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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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4-05-14 15: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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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뇌(龍腦)의 의료적 활용과 유통 


◎ 저자명: 권기석(HK교수)

◎ 학술지: 의사학 제33권 제1호

◎ 발행처: 대한의사학회

◎ 간행일: 2024.04.30


용뇌는 독특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향료이자 약재였지만 열대 동남아시아에서만 생산되어 국제적인 교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또한 원료 식물과 가공 방식이 다르지만 물질적 특성이 유사한 장뇌가 개발되어 용뇌의 저렴한 대체품으로 유통되었다. 조선에서도 용뇌와 장뇌를 서로 별개의 약재로 인식하고 고급품인 용뇌를 입수하고자 노력하였다. 용뇌는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키고 막힌 것을 통하게 하는 독특한 효과가 있어서, 다양한 질병에서 증상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용뇌는 대외교역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희귀한 물품으로서 향료와 방충 등의 용도로도 쓰였으나 의약품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용뇌를 왕실 가족에게 실제 처방한 기록이 다수 확인되며, 의학서에도 용뇌를 사용한 의약품과 유효한 증상이 다수 기재되어 있다. 용뇌는 조정 관료에게 매년 섣달에 ‘납약(臘藥)’을 나누어주는 관행에 힘입어 널리 조선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다. 납약은 평소에는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경우에 언제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상비약’ 용도였는데, 다양한 증상에 적용 가능한 용뇌가 들어간 환약이 이런 목적으로 활용되기에 적합했다.

용뇌는 적지 않은 의료적 수요에도 불구하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당약재’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 용뇌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수입되었는데, 진품 용뇌는 구하기 어려워 사행무역의 예물로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장뇌도 함께 유입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국가적인 수요를 반영한 관찬 기록이나 의학서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국가적인 수요나 의학적 효능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고급품인 용뇌의 확보를 우선적으로 추구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17세기 전반에는 명과의 사행로가 불안해짐에 따라 해로를 통해서 용뇌를 수입해야 했고, 그 결과 물량 확보와 품질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본산 용뇌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일시적으로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청 관계가 안정되면서 연례적인 사행 무역을 통해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용뇌 등 당약재를 수입해 오는 체계가 정착되었다. 내의원에서 당약재 확보를 주관하되 비용은 호조에서 지급한 은을 사용하였다. 납제에 사용되는 당약재의 양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이 될 정도로 약재를 확보해야 했다.

당약재 물량 확보를 위해 내의원은 ‘납자’ 또는 ‘공물주인’ 등으로 불린 공납업자를 활용했는데, 이들의 출현은 용뇌를 비롯한 당약재 무역에 민간 상인이 적극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민간 상인의 활동에 따른 약재 시장의 형성은 용뇌의 유통과 활용이 널리 확대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