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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1603년 마닐라 중국인 학살 사건 서사 분석 - 『東西洋考』 내 마닐라 금은 채굴 기사를 중심으로 -
작성자HK+관리자
작성일2023-02-13 13:06:39
조회수417
1603년 마닐라 중국인 학살 사건 서사 분석 - 『東西洋考』 내 마닐라 금은 채굴 기사를 중심으로 -
◎ 저자명: 남민구(HK연구교수)
◎ 학술지: 동아시아고대학 제68집
◎ 발행처: 동아시아고대학회
◎ 간행일: 2022.12.31
이 논문은 1603년 마닐라에서 발생한 중국인 학살 사건, 일명 大崙山慘案에 대한 『東西洋考』의 서사를 분석한다. 『東西洋考』의 저자 張燮은 福建 漳州 출신이다. 당시 漳州에는 月港이 있었다. 『東西洋考』에서 보여주는 사건에 대한 묘사 방식은 漳州인들이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중국 상인들과 마닐라 스페인인들은 16세기 이래 정기적인 무역을 수행했다. 마닐라로 갔던 상인 대부분은 漳州 출신이었다. 희생자의 대부분 역시 이곳 출신이었다. 이들 일부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하는 등 스페인인으로서 살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해상 무역에 종사하는 福建人들은 해적이나 ‘奸人’ 혹은 ‘奸民’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하였다. 또한 漳州 출신 상인과 泉州 출신 상인 사이에도 마닐라 무역을 둘러싼 경쟁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소동을 일으켰던 張嶷은 泉州 同安縣 출신이었다. 그는 황제를 설득하여 마닐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현지에 매장된 금은을 조사하고 이를 캐도록 설득하였다. 高寀는 福建稅監으로 파견하여 현지 은광을 개발하거나 세금을 징수하였다. 이를 통해 얻은 세금은 황실 세금으로 보내어졌다. 高寀의 포악한 행동으로 福建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었다. 사건이 발생하면서 福建 상인들은 자신들이 사건의 장본인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하였다. 이러한 우려를 인식한 듯 『東西洋考』에는 張嶷과 高寀를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서술 방식이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