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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임경준, 壬辰戰爭과 靑布⋅藍布 — 明軍이 朝鮮에 가져 온 중국산 면포

  • 작성자HK+관리자

    작성일2022-09-20 10: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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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戰爭과 靑布⋅藍布 — 明軍이 朝鮮에 가져 온 중국산 면포


◎ 저자명: 임경준(HK교수) 

◎ 학술지: 중국학 제101집

◎ 발행처: 한국중국학회

◎ 간행일: 2022.08.31


임진전쟁 시기 명군에 의해 조선으로 유입된 靑布와 藍布는 사료상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표기되었다. 본고에서는 각각의 명칭이 가진 특징을 유형별로 고찰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1) 靑布·藍布는 綿布와 구별되는데, 후자는 염색하지 않은 綿布인 白布로 추정된다, (2) 사료에 등장하는 ‘靑藍布’는 단일 품목이 아니라 ‘靑布’와 ‘藍布’를 한 데 묶어 표기한 한문식 어법에 지나지 않는다, (3) 靑布와 藍布는 중국산 고급 면포를 가리키는 반면, 靑木綿과 藍木綿은 국내산 면포를 가리킨다, (4) 靑布와 藍布는 포를 짜는 단위인 升을 따서 三升布로도 통칭되었으나 예외가 존재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靑布와 藍布가 조선에 유입된 직접적 계기는 명군의 식량 수송 문제와 직결된다. 銀을 사용하지 않는 조선의 경제 체계로 인해 명군은 銀을 사용해서 군량이나 말먹이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데 곤란을 겪었다. 이에 따라 明軍의 군수를 책임지고 있던 遼東都司 張三畏는 靑布를 준비해 와서 조선 내에서 곡식을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조선에서 이를 수락하면서 대량의 靑布·藍布가 조선에 운송되었다. 安徽省 蕪湖 일대에서 생산되던 靑布는 布綿甲을 제작하는 데 활용되었는데, 명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상품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면포가 높은 교환가치를 가졌던 조선사회에서 靑布와 藍布는 군수물자를 확보하는 데 매우 적합한 물품이었다.

靑布와 藍布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조선에서도 이를 사용하는 집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본고에서는 조선에서 靑布와 藍布가 어떠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는지를 (1) 포상 수단, (2) 화폐 용도, (3)방한용 의복으로 나누어 실증적으로 규명하였다. 무엇보다도 明軍이 주둔하는 동안 은과 더불어 靑布의 화폐화가 급속하게 진전되었고 이러한 추세에 明만이 아니라 조선 역시 편입되고 있었던 점은 특기할만하다. 반면 靑布와 藍布가 당초부터 군용 면포의 용도로 중시되었다는 선행연구의 지적과는 대조적으로 임진전쟁 시기에 靑布·藍布로 갑주를 제작하였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靑布·藍布로 제작한 갑주의 기능과 효과는 임진전쟁 말기에 명을 통하여 전해졌지만, 그 상용화는 종전 이후에야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