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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임경준, 明初의 말 수급체계와 거래가격 ― 女眞⋅高麗⋅朝鮮에 대한 말 수매가를 중심으로 ―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2-03-21 15: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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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初의 말 수급체계와 거래가격 ― 女眞⋅高麗⋅朝鮮에 대한 말 수매가를 중심으로 ―
◎ 저자명: 임경준(HK교수)
◎ 학술지: 동방학 제46집
◎ 발행처: 동양고전연구소
◎ 간행일: 2022.02.28
明朝는 몽골~北元세력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었던 까닭에 軍馬의 지속적인 확보에 몰두하였다. 명을 건국한 洪武帝는 官馬의 관리기구로서 太僕寺를 설치하고 수도인 南京일대의 人戶를 養馬戶로 편성하여 말의 사육을 장려하였다. 그러나 洪武帝사후 발발한 靖難의 役을 거치면서 방목지는 황폐해지고 국가의 官馬는 빠르게 고갈되었다. 靖難의 役에서 승리한 永樂帝는 女眞과 朝鮮에서 말을 수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永樂帝는 遼東의 접경지역에 馬市를 설치하고 女眞과 말을 거래하였고, 조선에 대해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말 거래를 제안하였다.
15세기를 전후한 시기 明의 말 수매가를 지역별로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려말에 비하여 조선초에는 가격이 대폭 하락하였는데, 이는 조선에 대한 홍무제의 부정적인 태도가 반영된 결과라 판단된다. 그러나 靖難의 役이 발발하고 수세에 몰린 建文帝가 제안한 말 가격은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가격이었다. 이후 永樂帝가 즉위하자 말 1필당 가격은 견직물 3필과 면직물 2필이란 수매가로 귀착된다.
한편 女眞의 경우 遼東馬市에서 거래된 말의 평균 수매가가 永樂3년에 견직물 3.6필⋅면직물 14.6필이었고 이후 永樂15년에는 米5석과 견직물⋅면직물 각 3.2필이었던 것과 비교한다면, 명은 고려나 조선에 비해 女眞을 더 우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명과 고려~조선 간의 국가관계가 말의 거래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