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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이승호, 『翰苑』 夫餘傳과 7~12세기 類書의 夫餘關係記事 검토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2-03-04 17: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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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翰苑』 夫餘傳과 7~12세기 類書의 夫餘關係記事 검토
◎ 저자명: 이승호(HK연구교수)
◎ 학술지: 선사와 고대 제67호
◎ 발행처: 한국고대학회
◎ 간행일: 2021.12.31
본고에서는 『翰苑』 부여전을 비롯하여 『晉書』 부여전, 『通典』 부여국조, 『太平寰宇記』 부여국조, 『太平御覽』 부여조, 『册府元龜』 부여국조, 『通志』 부여조 등 唐代 이후 찬술된 문헌의 부여 관계 기사에 대해 검토하였다. 살펴본 결과 먼저 唐ㆍ宋代 여러 문헌에 실려 있는 부여 관계 기사는 대부분 『三國志』와 『後漢書』 및 『진서』 부여전의 정보에 바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은 유실된 『魏略』의 기술을 직접 인용한 경우는 검토한 문헌 중에서 『한원』 부여전이 유일하였다. 『한원』 부여전을 제외하면 唐ㆍ宋代 문헌 중에 부여 관계 기사는 대체로 『삼국지』 및 『후한서』 부여전을 바탕으로 기술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後代 類書의 부여 관계 기사에는 현전하는 『후한서』 및 『삼국지』 부여전에서 전하는 정보와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있다. 바로 2~3세기 부여 왕계와 관련한 정보인데, 『후한서』 부여전에 보이는 부여왕 ‘夫台’에 대한 정보를 후대 類書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점이나, 2~3세기 부여 왕계에 대해 尉仇台-位居-麻餘로 기술하면서 『삼국지』 부여전의 인식과 차이를 보이는 점은 현전하는 『후한서』 및 『삼국지』 부여전의 관련 기사들을 다시 곱씹게 만든다. 특히 『삼국지』 부여전 기사에서 그동안 하나의 인명으로 간주해 온 “簡位居”에 대한 해석 문제와 부여 麻餘王 시대에 ‘大使 位居’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후대 類書에서는 그를 尉仇台의 孫으로서 麻餘 이전에 왕위에 있었던 인물로 보는 시각 등은 이 시기 부여 왕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