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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행 : 배울 복(福)이 세워진(建) 행로.
작성자최정환
작성일2026-03-29 22:37:29
조회수6
떠나며.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이 북쪽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고사다. 강남과 강북의 환경이 달라, 사람들과 문화도 그 영향을 밭아 달라짐을 암시한다. 중국에 중앙이랄 것이 사라졌던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과학적으로도 틀린 소리일 뿐더러 그 시절이 좋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탈중앙을 통해 지역 고유 가치를 돌아보고자 하는 오늘날 지역사 학문 흐름에서는 느낀 점이 색다르긴 하다. 사학도로서는 귤맛이든 탱자맛이든 달달한 발상이 나오길 바라며 종종 입안에 굴려보는 네 글자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말로만 말고 가서 향도 맡고 씹어도 보고 만지기까지 가능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심지어 성 단위로 지역사를 특색있게 다룬다고 하는 중국 중에서도, 사투리부터가 특별나다는 복건성이라면?
고사에서 이르는 남북은 회수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중국은 회수 하나만 가지고 남북을 논하기엔 훨씬 커졌다. 고사의 뜻을 돌아볼 때 더 확장해 생각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회수고 나발이고 비행기가 있다.
동국대학교 HK+ 사업단이 주관하는 복건성 인문캠프에는 그렇게 참여했다.
1일차
첫 번째 일정은 하문 시에서 시작한다. 발음대로 읽자면 샤먼.
비록 상해와 같은 대도시는 아니지만 인구 250만에 달하는 중국 7대 경제특구 중 하나일 정도로 큰 항구도시이다. 복건성에서 손에 꼽는 거점도시로 지역 항공사까지 있으니, 이를 타고 넘어가는 방문객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첫날의 일정은 중좌소영으로 예정되었다. 예로부터 해안의 요충이던 하문에는 명나라 시절부터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기지인 위소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방문을 못했다.
왜냐하면 그 위소도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기능을 다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배 타고 온 왜구와 비행기 타고 온 한국인들을 헷갈렸는지 공항에서 구류당할 뻔한 일이 있었다. 중국 세관 당국의 오해와 실수로 첫날의 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위소의 성첩은 한세월을 거뜬히 버텼으나 방비하는 이들의 기율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지긴 했는데 영 이상하게 되어있으니 옛말에 만사가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지금의 중국 지도부는 옛 홍무제의 전범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먹을 복, 배울 복, 즐길 복을 위한 액땜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후 밝혀진다.
2일차.
하문의 문은 문자 그대로의 문이므로, 이곳을 통하여 복건의 내지로 왕래함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가이드님이 복건지방은 옛말에 '민(閩)'이라 불렸는데, 산지에 있어 뱀이나 벌레가 많아 그랬다고 한다. 그런 땅에 살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참고 살거나 바다로 나아가는 선택지밖에 없었는데, 하문항을 비롯한 해안의 부가 후자의 것이라면 내지의 사람들은 전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이 머나먼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두에서 말했듯 그 풍토에 따른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다름아닌 토루다.
토루는 중국의 격변기마다 전화를 피해 남쪽 변방으로 도망쳐 온 객가인들의 집이다.
이들 객가인들은 도망자들답게 겁이 많고, 현지인들과도 충돌하기 십상이었으며, 심지어는 서로와도 항쟁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치고는 무척 안타깝게도, 가난하고 약했다. 그래서 이들은 토착민을 약탈하고 성벽을 쌓고 지배체제를 공고히한 모범사례를 따르지 못한다.
대신 주변의 흙과 나무를 섞어 튼튼한 담을 올리고 그 담장 바로 안쪽에 가가호호 집을 잇대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니, 그 모습이 하나의 루와 같다 하여 토루라 한다.
이 토루군은 아울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그 자체로 객가인들의 삶을 보이는 상징적인 건축물일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주민들이 살아가며 일상을 영위하는 장소라는 점도 고평가를 받은 듯하다. 사실, 순수 건축 측면에서 보면 고도의 기술이 쓰였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만한 규모의 건축물들이 일관된 이유로 세워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다.
비록 관광업의 힘을 빌려서나마 아직 유지되며, 주민들과 세계인들로 하여금 민 지역의 산간을 비집고 살던 객가인의 역사를 향유토록 한다면 그 문화의 가치가 아닐까 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주민들의 삶이 제 유산들을 향유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는 점이다. 어쩌면 주민들의 삶마저도 관광자원화 하는 셈인데, 이것이 역사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지역사를 보이는 대표적이고도 성공적인 예시를 보는 한편으로 앞으로 지역사 학계가 마주할 고민을 떠올리게 되는 2일차였다.
3일차.
사학도와, 사학도가 아닌 모든 한국인들에게도 하문보다 훨씬 익숙한 도시가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천주, 발음대로 읽자면 취안저우다.
이곳은 하문보다도 훨씬 오래된 양항으로, 무려 송나라에서 원나라를 거쳐 명 대에 이르기까지 수백년의 영화를 누렸다. 그리고 그 영화의 비결이란, 역시나 중앙의 행사만은 아니었다.
천주는 수많은 민족, 종교, 문화에게 관대했고, 그 다양성으로 무수한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 상업 전통의 형성에 관해서는 교수님께서 일강하여주셨는데, 송의 남하 이후 개발되기 시작한 천주가 일약 일대 최고의 무역항이 된 데에는 '포수경'이라는 시박사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록 관직을 받았지만 지역 해상 실력자로서 천주를 장악했다는 인물이다.
그는 원나라의 군대가 왔을 때 도시를 온존하는 선택을 내린다. 그 덕에 천주는 원조로부터 신뢰받는 항구로 그 무역 기능을 이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최대를 다투는 규모로 발돋움한다. 마르코폴로나 이븐바투타같은 이들조차 이곳을 보고 자이툰이라 하며 그 성세에 감탄했을 정도다.
강의를 통해 이러한 배경지식을 쌓은 뒤, 그 배경위에 선명히 남을 인상을 찾고자 답사가 이어졌다. 도시 내에는 바다 여신 천후를 모시는 천후궁, 대규모 불교사원인 개원사가 있다. 거기에 일정 내에서 방문하지 않았으나 세계에서 가장 큰 도교 노자석상이 있는가 하면 회교나 힌두교 및 기독교 신앙의 도상까지 도시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특히 천주 박물관이 이 모든 것들을 잘 녹여낸 듯했다. 그곳에서 본 묘비 조각에는 힌두교 도상을 차용한 불상이 기독교 천사의 날개를 달고 도교상징물 위에 새겨져 있다. 복잡할 정도의 다양성을 잘 녹여냈다는 증명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오직 지역민들만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천주 중심을 가로지르는 낙양교는 분명 중앙으로부터 시작된 관료제 시스템에 의존한 바가 컸다. 그 재원은 지역 상인들에게서 나왔을지라도. 또한 해안방어를 위한 숭무고성 역시 왜구 격퇴로 도시를 지키는 것을 넘어, 근대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지역 수호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다리와 성을 지어올리는 일들은 분명 지역민들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다층적인 지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연결해 제시한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중국땅이라서 더더욱.
천주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천후궁 신도들이 연명하여 조정의 명에 항의했던 사실이나, 분명 인민의 아편일 종교시설 등을 공산당이 놔둘 줄 몰랐다. 복건 지역, 그중에서도 개방적인 천주의 지역성이 21세기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세계 최대라는 권좌에선 내려왔을지언정 여전히 번영하는 도시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도시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중앙의 개입과 그것에 지지 않을만큼의 지역성 사이 길항관계를 생각해보게 되는 3일차였다.
4일차.
다시 돌아온 하문에는 배를 타고서야 건너갈 수 있는 고랑서鼓浪嶼라는 섬이 있다.
이곳은 바다로 나아갔다는 복건성에서조차 가장 바다에 면한 곳이다. 내륙 산지에서 객가인들이 지은 토루가 하나에서 수백으로 늘어나고, 한때 세상의 부귀를 한데 모았던 해안의 천주조차 수백년의 퇴적에 항만이 막힐 때까지도 이곳은 너무 외해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문에 외해를 건너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았다.
그 첫째는 정성공이다. 명말청초, 만주족의 기마와 포화를 당해내지 못한 정성공은 복건성의 해상력을 이끌고 포수경과는 다른 선택을 내린다. 대만 섬을 공격해 그곳의 네덜란드 세력을 축출하고 자신만의 해상권을 구축한 것이다. 지역 사람들 입장에서 세대를 거듭해 환호할 만한 성과다. 하물며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방문한 상가 거리에서는 정성공으로부터 시작된 지역 간식까지 팔리고 있었으니, 복건 사람들의 자부심을 알 만하다. 고랑서에서도 제일 높은 건물 중 하나가 통째로 정성공 기념관인 것은 그 덕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를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고랑서에 깊은 흔적을 남긴 두 번째 부류와 이어지는 얘기다.
정성공의 활동은 청이 해금령을 내리고 복건 상인들의 해상력이 지지부진하게 된 역사로 이어졌다. 결국 명말에 이미 코앞까지 찾아온 네덜란드야 물리쳤다지만, 그 이후 물리치지 못한 서구 해양 세력들의 침습은 고랑서에 그대로 새겨졌다. 새겨진 것이 상흔인지 아름다운 조각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정성공을 기념하는 섬에는 역설적으로 서양식 건물들이 가득하다. 서구세력의 이권을 대변할 영사관이나 그 관저 등이다. 아름다운 정원도 한 곳 있는데, 대만 부호가 일본과 사업해서 번 돈으로 지은 곳이다. 역사의 모든 면을 한꺼번에 볼 수는 없다곤 하지만, 이 정도로 극명한 차이는 그저 관광지이기 때문일지 지역민들의 문화와 역사인식에서부터 무언가 있는 것일지 의문스럽다.
특히 뒤이어 찾은 호리산포대에서 이 생각은 더욱 커진다. 호리산 포대의 단 하나 남은 거포는 현존하는 해안포중 가장 거대하다. 청말, 그러니까 대포가 사람보다도 커질 수 있는 시기에 독일 크루프 사로부터 도입되어 포왕이라고까지 불린다. 그 상세한 재원은 기억나지 않으나, 호리산 포대가 마주하고 있는 하문시 남쪽 해안, 이제는 하문 대학의 아름다운 교정과 해변의 화려한 휴양지를 넘어 수십km 이상을 감제하고 포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단 하나만 남은 데서 알 수 있듯 그 목표달성에는 실패했다. 이 포대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정작 답사 일행을 제외한 현지인들은 많아보이지 않았다. 전 세계에 단 하나 남은 포왕은, 그러나 어지간한 해적 두목도 사당 지어 왕으로 모시는 복건인들의 땅에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홀로 서있다. 한때 외세를 막고자 했던 발악은 잊혀지고, 반대로 외부와 교류하는 지역 거점 양항이 된 하문에서 주민들은 지명 속 '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목 적 - 크라우드 펀딩 기본개념과 와디즈 펀딩 진행에 관한 지식 습득 - 성공 및 실패 사례 분석을 통한 펀딩 성공률 제고 □ 개 요 1. 명 칭 : 크라우드 펀딩(와디즈) 교육 2. 일 시 : 2020. 10. 29.(목) 14:00~17:00 3. 장 소 : 온라인(webex) or 오프라인(원흥관 i.SPACE) 4. 대 상 : 창업에 관심 있는 일반 재학생 30명 내외(선착순) 5. 강 사 : 이희용 프로/투자심사역(와디즈파트너스(주)) 6. 교육주제 : 크라우드펀딩의 A to Z, 대학생 (예비)창업자가 와디즈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 7. 신청기한 : 2020. 10. 21.(수) 15:00까지 8. 신청 URL : http://naver.me/57pFOBDc 9. 문의(창업원 창업교육센터) : 02-2260-4994(평일 10: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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