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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년도 제2차 인문 캠프 '시코쿠(고치)'_2024.12.23. ~ 2024.12.27. 답사 후기
작성자최정환
작성일2025-02-27 15:04:39
조회수115
여행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학생의 자세로 지난 배움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시코쿠 섬에서 보낸 5일은 단순한 답사지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 관광 면으로도 초보에 답사라는 데에서는 불안까지 느끼면서도 다행이 깊이 남을 경험을 즐기고 왔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처음의 기대는 충족되고 불안은 불식되니 다시 되새겨 글 쓰기도 줄줄 써진다.
참여하기 위해 열심히 신청서를 작성했지만, 정작 그 내용은 출발 전 비행기 안에서 다시 꺼내보아야 할 만큼 잊어버렸다. 다시 읽어보니, 나는 ‘도사 번(土佐藩)에 관심이 있어 이번 기회에 알아가고 싶다’는 짤막한 문장만 적어 두었다. 결국, 단체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으면서도, 처음에는 혼자 조용히 다닐 생각만 했던 셈이다. 일본어도 못하는 내가 시코쿠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한 교수님들과 동료들 덕분이었다.
특히 자료집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지역 안내서나 관광 책자가 이미 아는 정보 위주로 구성되지만, 시코쿠처럼 생소한 곳에서는 미리 알 수도, 하나하나 검색해볼 수도 없었기에, 자료집이 중요한 가이드가 되었다. 첫날 에히메 현(愛媛県) 도요 지방(東予)을 가로지르며 본 풍경과 마지막 날 츠노 센세의 설명이 자료집 내용과 그대로 일치하는 경험도 했다.
밤에 도착한 고치 시에서는 고치 성 야경이 인상적이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흰 성벽이 우리가 묵을 호텔과 고치 현청 건물과 대비되었고, 성을 보며 정찬을 즐겼다. 특히 가쓰오 타다키(가다랑어 뱃살을 살짝 구운 요리)는 익힌 테두리와 생선회 같은 중심부가 조화를 이루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동행들에게 고치 성 야경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관광지로는 히로메 시장이 추천되었지만, 성이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였다. 고치 성에 도착했을 때, 성내 공원은 늦은 시간이라 출입이 막혀 있었다. 대신 근처에서 예상치 못한 신사를 발견했는데, 지역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신사는 일본 여행에서 흔히 들르게 되는 장소지만, 사람들과 단체사진을 찍으며 더욱 정이 들었다.
이후 히로메 시장으로 이동했으나 늦은 시각이라 대부분의 매장이 닫혀 있었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결국 현지의 야키토리 집을 찾아 모두 함께 이동했다. 현장에서 숯불에 구운 닭꼬치와 생맥주는 그날 밤의 만족을 완성해 주었고, 덕분에 동행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다음 날, 고치 시 역사 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는 지방 중소도시 수준이었지만, 지역 특화 산업과 역사적 유구를 통해 지역 변화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전통 어업 도구가 산업화 과정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며,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상호작용형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이후, 전날 밤 오르지 못했던 고치 성 천수각에 올랐다. 일본식 성을 볼 때마다 축조술의 정교함에 감탄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조선군이 직접 공성전을 펼치지 못했던 이유가 일본식 거성의 방어력 때문이라는 사실이 교수님의 설명과 함께 더욱 와닿았다. 천수각 내부는 신발을 벗고 올라야 했는데, 겨울이라 발이 시려웠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모습은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이후, 자유민권박물관을 방문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도사 번이 수행한 역할과 사회 변화상을 강조하는 큐레이션이 돋보였다. 전시 구성은 감정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고, 관람객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연출이 효과적이었다.
고치 대학에서는 츠노 센세의 강의를 들었다. 시코쿠 지역 다이묘인 조소카베 모토치카의 이미지 변화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역사적 인물이 시대와 매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일본에서는 NHK 특집 프로그램까지 제작되며 사료 기반으로 인물상을 재정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후, 일본 학생들과 교류하며 만찬을 가졌다. 교수님들이 선물한 술을 돌리며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공식적인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간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2차, 3차로 이어진 술자리에서 일본의 회식 문화도 경험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카가와 현으로 이동해 율림공원을 둘러보았다. 동양의 조경 철학은 유럽과 달랐는데, 이곳에서는 ‘다음으로 갈 길’을 중심으로 설계된 점이 흥미로웠다. 자연스럽게 조형된 경관 속에서 다리를 건너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여행의 일부였다. 이후 시누키 우동 만들기 체험을 했고, 직접 반죽을 밟고 면을 써는 과정을 거쳤다.
고토히라궁에서는 1300개 계단을 오르며 전통적인 신사의 웅장함을 체험했다. 도중에 다양한 상점과 토리이가 배치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았고,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는 가히 장관이었다.
세토 대교를 방문하며 일본의 건축 기술력과 스케일을 실감했다. 이후,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에서는 그의 재조명 과정과 근대화 담론의 변화를 접할 수 있었다. 료마는 일본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현대 일본에서 영웅으로 만들어졌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일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큐레이션, 특히 흑선과 근대화의 서사를 강조하는 전시 동선이 흥미로웠다.
마츠야마 시에서는 관광 쿠폰을 받아 도고 온천을 방문했다. 일본 덴노 황실 전용탕을 체험하는 타마노유 프로그램을 선택해, 더욱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후 현지 술집을 찾아 감귤주와 모둠회를 즐기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마지막 날에는 마츠야마 성을 방문했다. 거대한 규모와 방어시설의 정교함이 인상적이었고, 천수각에서 내려다본 전망이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단순한 즐김을 넘어,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체 여행에서 일정과 동료를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많았지만, 그것조차도 즐거움의 일부가 되었다. 과거에는 온전히 여행만을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배움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결국 여행의 본질은 기억이 아니라 즐거움에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어디 물질이나 사람으로부터 구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나 혼자 게임할 때 여행을 추억하며 게임 내 메시지를 바꿔보는 그런 감상에 있지 않나 싶다. 그러니 여행에서 배움도 즐거움도 내게 달렸고, 내가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똑같이 즐기고 얻을 수 있는 법이다. 다음에도 이같은 여정을 또 한 번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