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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인문캠프 [전근대 한일관계의 가교, 쓰시마를 가다 1차]_2024.2.20~2024.2.23_부산
작성자정성지
작성일2024-08-02 19:09:49
조회수131
" 니 몸 속 한맺힌 핏방울 하나하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니"<파친코> 중
이 시기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배경인 부산앞바다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강한 비바람으로 결항되어 본래의 쓰시마 답사는 미뤄지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더 많은 자료들을 보고 배우는 부산답사가 되었습니다.
[ 부산 역사관 답사 ]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란민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부모, 형제를 향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과 헤어져 평생 연이 없던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은 영도다리로 모여 들었습니다. 수많은 피란민들의 이정표, 영도다리에는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다리 곳곳은 헤어진 사람을 찾는 벽보로 도배되었습니다.
영화<국제시장>의 작품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영도다리 아래 즐비하게 늘어선 점집 골목을 보며 가족을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아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란민들의 간절함과 불안감이 절박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 부산박물관 답사 ]
<판자촌과 대화재> Refugee Residence and Conflagration
광복과 연이은 6,25전쟁으로 부산에 밀려든 피란민들이 폭증하면서 전쟁 직전인 1949년, 47만 명이던 인구가 전쟁이 끝난 이후 1955년에 는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대청동과 보수동, 용두산, 영주동 등 산동네와 해안가처럼 피란민의 일터에서 가까운 곳은 판잣집으로 뒤덮이게 되었고 화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판자와 종이상자로 지은 집은 다닥다닥 붙어있어 화재가 났다 하면 큰불이 되기 일쑤였고 1953년1월에는 국제시장 대화재로 상가 4,200여 채가 불탔고, 이재민 3만여 명이 발생했습니다. 책 글씨들의 정보로 읽기만 했던 문장들이 사진과 자료로 살아나서 저에게 다가왔고 현시대의 휴브리스와 풍요 속 빈곤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이해진 (2024-08-04 23:17:02)
지역인문학센터 답사 프로그램 전체를 후기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후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답사들이 다시금 생각나네요^^
많은 것을 체험하고 느껴볼 기회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