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인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모든 이들의 행복과 조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4회 인문캠프 [논산,익산의 역사 문화 탐방]_2023.8.17~2023.8.18_논산과 익산일대
작성자정성지
작성일2024-08-02 18:39:37
조회수74
더운여름, 가장 더운 한반도의 최남단에서 무엇을 할까 기대를 가지고 임한만큼 열기속에서도 흥미로운 강연을 통해 선조들이 학문에 임한 발자취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연: Seowon, Korean Neo- Confusion Academies/ "조선은 왜 제국주의 국가에 가난하게 망했는가"_ 김문준 교수님
장소: 논산의 돈암서원, 주자의 사상으로 세운 학교
많은 이들이 돈암을 돼지바위로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 돈암의 돈은 주역의 둔괘, 남송 유교사상가 주자가 말년에 사용한 둔옹의 호를 가탁한 명칭입니다. 따라서 돈암서원은 주자의 사상으로 세운 학교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명나라의 성리학 이념, 주리론과 주기론의 잘못된 확산, 성리학의 저력까지 유의미한 강연으로 한층 더 성장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나마 강연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리학에 대한 이해
병가와 법가에는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이 없 다. 법가에서 인간이란 세팅된 세상에 집어넣는 부속품, 소모품에 불과 하고 '너희는 모두 범죄자이니 감시와 통제가 필요함' 성악설을 기반으 로 하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성리학에서 공자와 맹자는 당시의 세상에서 처음 듣는 개소리를 꿋꿋이 외친 독특한 엘리트들이었다. 처음으로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행복과 자유"임을 주장한 것이었다. (1)하나의 인간은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스스로의 귀한 가치에 대한 공부가 첫째이다. "자아에 대한 존경을 갖추기 위함"이 서원이 생긴 이유이다. (2) 스스로의 귀한 가치를 깨달은 후 단단하고 강해져서 세상에 나와야한다.
이러한 성리학을 기반으로한 명나라는 '니가 뭐라고 불구자, 가난뱅이, 문맹인을 함부로 대하니,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서의 귀함을 가진다'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존엄성을 갖춘 국가였다. 이러한 사상이 당시의 양반들을 감동시킨 것으로 명나라가 망해도 명나라를 따른다는 "대명천지"가 17세기 이후 양반들의 묘비명이든 어느 패든 새겨지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많은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성리학은 주리론, 주기론이다.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세력이 유림이었고 1919.3.1운동을 비롯해 일본이 십년을 조져도 꺾이지 않았던 세력이 유교였다. 1900파리만국박람회에 참석한 일본은 뇌가 반짝이는 광경을 보게 된다. 영국인이 시키지 않아도 협박하지 않아도 군말없이 굽신거리고 죄인처럼 복종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이었다. 일본은 조센진들을 회유시키기 위해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가는 학교,공장, 근대식 건물설립에 지친 상태였고 새로운 유교를 창안해서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그건 이황과 이이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켜 한반도의 정신을 가르는 것이었다. 조선 성리학의 대표 퇴계이황과 율곡이이는 같이 성리학을 공부하고 머리를 맡대어 자고 편지로 교류하던 관계였다. 이와 다르게 일본은 이황과 이이를 서로 다른 학파와 사상으로 나누어 조선을 국가, 지역, 정치적으로 가르고 대립시켰다.
영남지역을 퇴계학파랍시고 주리론으로, 호남지역을 비롯해 서쪽을 이이의 기호학파로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도 잘못된 성리학이 흘러오고 있고, 작년 수능출제위원회로 잘못된 주리론 주기론 내용을 출제하려 하셨으나 학생들에게 어렵다해서 그냥 수능특강에만 남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직은)안전한 밤을 다닐 수 있는 한국인의 정서적 문화적 저력, 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그리고 제국주의시대에 부국강병과 약탈로 성공한 영.프에 이어 일본에 한국이 가난하게 당한 이유는 끝까지 인간의 가치를 지켜나가고자한 주자의사상 성리학 때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백년의 역사를 단숨에 쏟아내신 많은 지식의 강연이었습니다. 그만큼 제 심장을 뜨겁게 했고 일제강점기 시대의 유학자들을 원망스러워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무엇인지 성리학의 본질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개태사 답사]
함께 참여했던 사학과 학생들 덕분에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고 모든 일정을 항상 가장 좋은 숙소, 가장 맛있는 식사로 준비해주셨습니다.첫일정으로 방문한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국직후 개국사찰로 창건한 장소입니다. 고려의 야심과 자부심, 일제의 절도 실패 일화가 얽힌 대왕밥솥, 철확을 마주했는데 목욕탕이 떠오를만큼 엄청 컸고 5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가마솥이라고 하셨습니다(#제1호민속 자료) 왜 하필 고려건국의 야심을 밥솥으로 표현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미륵사지 답사_백제 역사 ]
열다섯에 다녀왔던 백제탐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미륵사지는 일제가 콘크리트로 덧발라 놓은 마음 아픈 모습이었습니다. 십년 가까이 흐른 이번 백제 탐사에서는 미륵사지석탑과 익산국립박물관, 백제중흥강연을 통해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들과 실재의 모습들이 이어져 심장이 뛰는 설렘을 느껴볼 수 있었다. 활자로 머리로 그려보았던 것보다 더 웅장했고 기품 있는 우아함이 와닿았습니다.
[강경근대거리, 강경역사관 답사]
강경근대거리는 1930년대 최대의 성시를 이준 장소로, 내륙깊숙이 위치하여 해상과 육상교통의 요충지로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던 과거의 모습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과 함께 곳곳의 유적지를 돌아보았고 "이거 뭐하는데 쓰는지 아니?" 물으시며 유적물들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더 뜻 깊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한국인이 같은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숙박: 논산한옥마을 _ 쾌적 산뜻 꿀잠
방을 들어가자마자 더위를 잊을 수 있을만큼 서늘하고 쾌적했으며 한옥의 고즈넉함 속에서 휴식할 수 있었습니다. 잠귀 밝고 잠드는데 오래걸리고 잘깨는 편이지만 눕자마자 꿀잠을 잤습니다. 눈감기전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여름의 빗소리와 한옥에서 마주하는 비내리는 풍경은 내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